글쓰기 +/각색하기

(각색)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2

야곰야곰+책벌레 2022. 1. 26. 23:04
반응형

어제의 나에게는 익숙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모든 것이 새롭다. 넓지 않은 방이었지만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될 방이었다.
방을 한 바퀴 돌아보다 커피가 보였다. 그를 쳐다보며 "차 끓여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응"라고 대답했다.
머그컵은 쉽게 찾았는데, 커피포트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포트는 없으니까 그 냄비로 물을 끓여야 해"라고 그가 말했다.
"아하"
냄비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만드는 건 처음인데, 재밌다. 냄비에 물을 붓고 레인지에 올린 뒤, 머그컵을 나란히 놓았다.
"커피는 어느 정도 넣죠?"
"보통"
보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커피 가루를 넣은 컵을 그에게 내밀었다.
"... 이 정도?"
그는 컵에 담긴 가루를 살피곤,
"응. 이런 것까지 체크하는구나"
"물론이죠"
그의 서운함이 묻은 말을 피하며 밝게 대했다.
"꼭 에미 같네"
"같다니 무슨 소리예요~"
가스 불을 붙이곤 더 할 일이 없어 어색해졌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냄비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얘기했다.
"저희는, 정말로 연인이 되었군요."
"참고로 하나 알려줄게."
"네?"
"커피를 끓이는 횟수는 내가 압도적으로 많아. 그보다 넌 거의 끓이지 않았어."
그는 행복한 상상이라도 한 듯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의 39일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미리 준비해 둔 수첩을 펼치며 그에게 물었다.
"오늘까지 있었던 일을 되도록 상세하게 들려줬으면 해."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나와 수첩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가방에서 5년 전의 메모장을 꺼냈다.
"네가 본 이건... 가짜야."
"뭐..?"
"가짜까진 아니지만 5년 전에 너한테서 들은 대략적인 일들. 하지만 내가 이제부터 진짜로 참고하는 건, 기억이 생생한 지금의 너에게 듣고 만들어야 할 이쪽이야."
그는 놀란 눈치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다.
"너와의 역사를 바꾸고 싶지 않으니까"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듯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내가 어떤 실수나 실언을 했는지 그는 3시간가량을 얘기해 주었다. 핸드폰 이력까지 봐가며 시간까지 꼼꼼히 체크해 두었다.
처음 만난 일, 첫 데이트, 고백한 일, 나의 비밀을 얘기해 준일.
손을 잡은 일, 키스한 일, 껴안은 일... 
"... 고마워"
라고 말하며 잡고 있던 볼펜을 놓았다.

그는 이제야 비밀을 알아냈다는 듯이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39일간 그에게 들은 기억대로 살아내고, 아쉬워지지 않도록 잘 해낼 거다.
".... 그럼 에미는 조금도 즐겁지 않잖아"
반쯤 우는 듯한 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이런 대본에 맞춰 행동하면, 에미는 하나도 즐겁지 않잖아"
진정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그의 모습에서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지가 느껴졌다.
그가 만난 나는 행복했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지 않아. 함께 있기만 해도 기쁘고, 무슨 일이 생길지 알아도 즐거운 건 즐거운 거야"
"하지만.."
나는 얍.이라고 외치며 그의 팔을 잡곤 몸을 기댔다.
"이런 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아무 문제없어."
그가 나를 껴안았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사랑이 느껴져 그가 하는 대로 두었다.
왠지 모를 편안함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아무 문제없구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