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의 나는 옆 세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엄마, 아빠를 설득하느라 꽤 힘들었다.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을 채우려고 간다고 했지만 사실 다섯 살 때 만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더 컸다. 바로 옆 세계로의 여행은 최장 40일이지만 갈 수 있는 주기는 사람마다 달랐다. 가족 여행으로 갔던 지난 다섯 살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아무도 맞질 않았다. 엄마, 아빠가 반대한 이유이기도 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좁은 통로. 내 기억에는 어렴풋하지만 처음 가는 길과 같았다.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도 바로 이 사람이야라고 느꼈던 그 순간의 감정은 너무 생생하다. 얼굴도 기억나질 않지만 "또 만나자"라고 했던 그 사람의 확신에 찬 말이 나를 알아봐 줄 것 같았다.
녹색으로 늘어선 문에 손을 얹고 "만나게 해 주세요"라는 작은 목소리와 함께 옆 세계로 왔다.
교토.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도시다. 출발 전에 엄마에게 교토의 지도를 펼쳐두고 내가 죽을 뻔한 곳이 어디였는지 물었다. 나카노시마 장미정원. 부모님께 허락받은 2박 3일. 그곳에서 내 운을 시험해 보리라.
장미 공원에 도착. 첫날이니 공원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운명이라면 이 정도 움직임은 괜찮겠지. 큰 나무를 옆에 둔 돌로 된 다리를 건너니 여러 가지 색의 장미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4월 중순이라 그런지 장미는 절정이었다. 장미 공원답게 길게 늘어선 장미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내 지치고 말았다. 쉴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커다란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빨간색으로 칠해진 제법 큰 건물이었다.
"주.. 중앙 공회당?. 저기라면 쉴 곳이 있겠지."
기운을 차리고 힘을 내 움직였다.
"에미? 후쿠주 에미"
갑자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세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알리가 없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멈췄던 다리를 다시 움직이려 하는데 다시 들렸다.
"후쿠주 에미 씨죠?"
내 앞에는 180cm 정도의 키에 20대 중반쯤 되는 남자가 서 있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잘 생겼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 사람이다'라는 그 느낌이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죠?"
"다시 만나자고 했으니까"
이 남자.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다는 듯, 내가 오는 날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는 건 다음 주기에도 만났다는 얘기다. 이 세계 사람들은 나의 세계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분명 좀 더 자란 내가 좀 더 어려진 그에게 얘기를 전한 듯하다.
"나를 알고 있어요?"
남자는 웃고 있었지만 슬퍼 보였다. 나랑 당신은 어떤 사이인 건가요?
"어린 너도 여전히 예쁘네"
뜬금없는 말에 무시하듯 돌아섰다. 사실 이 사람이다 라는 감각으로 심장은 뛰고 있지만 확인이 필요하다.
아.. 하고 잠시 고민한다.
"네가 기억하고 있는 건 이것밖에 없을 것 같네."
"네?"
"불이 난 행사장에서 너를 안고 뛴 사람이 나야."
"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어"
"그럼.. 당신은.."
"그날 널 구한 사람이야..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네가 얘기해 줬기 때문이고"
이 사람이다. 정말 만나러 와 주었어.
"내가 말해 줬다고요?"
"그래. 얘기하려면 길어. 가까운 곳에 카페가 있어. 앉아 얘기하면 좋겠는데"
라며 따라오라는 듯 앞서 걷는다. 그리곤 이내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내 이름 모르겠구나. 나는 미나미야마 타카토시 야."
카페에 도착해 주문을 하곤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5년 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돼. 연인이라는 얘기지"
"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눈빛. 그래서 슬퍼 보였구나.
사랑했던 기억을 가지고 살았을 그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다섯 살 일 때 넌 나를 구해줬어. 네가 다섯 살 일 때 내가 구해줬듯이"
5년 뒤의 일을 하루하루 다 기억한다는 듯이 얘기를 한다. 갑자기 기시감이 들었다.
"5년 뒤의 일을 지금 다 알아둬야 하나요?"
"지금 내가 너를 찾았듯이 너도 나를 찾아와 줬음 하니까. 5년 뒤에 나는 너를 기억하지 못하니까"
"아.. 그래도 처음 만나는 곳만 알면 되잖아요."
"네가 그러길 원했으니까. 그러길 원하고 있었으니까. 우리 이야기가 그대로 이어지길 바라니까"
평행선처럼 나란히 그러나 반대로 흐르는 우리들의 이야기. 너는 나를 다섯 살 때 구했고 나는 네가 다섯 살 때 구한다. 내가 한눈에 반했듯이 너도 나에게 한눈에 반할 예정이다. 서로의 과거에서 가져온 이야기가 서로의 미래에서 가져온 이야기와 정확하게 맞아야 한다. 우리의 20살의 만남은 우리의 사랑이 완전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다. 나는 그에게서 사랑을 이어받았다.
"5년 뒤의 우리도 여기서 헤어져. 아니 다시 만나게 돼. 너의 입장에서.."
예정했던 2박 3일을 그와 보냈다. 헤어지기 전에 스무 살의 우리를 잘 부탁한다며 살며시 안아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조금 헤진 검은색 다이어리를 내밀었고 '우리들의 기록이야'라고 얘기해 주었다. 이제는 내 차례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안녕.."
"안녕.."
기대와 슬픔이 뒤섞인 묘한 말을 뒤로한 채 이 세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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