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물고기에게 물에 관해 묻는 일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 뒤란

야곰야곰+책벌레 2022. 1. 2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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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에게 물은 어떤 의미일까? 그 답을 물고기에게 물을 수는 없다. 그래도 물이 물고기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알고 있다. 물은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마실 물에 대해 걱정하지 물고기가 마실 물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까지 확장해서 얘기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서 조금은 더 다정함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져 가고 있는 편견과 차별 그리고 부족주의와 여전히 남아 있는 연대와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이 작품은 뒤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92세 홀로 남겨진 시각장애인 할머니 밀리 구터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의 17세의 레이먼드 제페. 둘의 만남은 우리 사회에서 외면받는 두 부류의 만남이었다. 릴리 할머니는 자신을 돌봐 주던 루이스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문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 레이먼드를 이해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일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때 그것이 얼마나 다수에 포함되어 있냐 것이라면 이들은 분명 비정상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으로 얘기하자면 그들은 그냥 선한 평범한 인간들이다. 우리가 구분 짓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찾은 한 단어는 '이유 없는 기피들'이었다. 사실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닮을수록 좋아한다.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아지는 건 좋아하지 않는 점은 논외로 하자. ) 그런 입장에서 릴리 할머니와 레이먼드는 분명 다른 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넓은 의미의 공동체에는 포함되지만 좁아질수록 공동체 밖으로 던져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넓은 공동체의 삶을 대표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죽은 루이스의 재판을 맡은 배심원들은 극히 좁은 공동체를 대표한다. 우리가 서로 보살피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따라 공동체의 크기는 달라진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향해가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그 크기는 가족 수준으로 좁아져 있다. 곧 개인 수준으로 좁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형태적으로는 많은 사람들과 엮여 있지만 연대감은 없는 삶을 살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이 사이코패스가 되어 있을지도.. 지금의 인간의 진화 방향은 그쪽에 가깝지 않을까.

  그럼에도 희망은 있지 않을까? 레이먼드가 릴리 할머니를 위해 '루이스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루이스들에게서 알 수 있다. 모두 전화로 얘기할 때에는 귀찮다는 듯이 응대하지 않았지만 직접 찾아 직접 대면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의 사정을 듣고 다정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위험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작은 공동체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었다고들 푸념했다. 마음을 나누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은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에 급급하게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현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SNS에서 훈훈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응원한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던 부채감을 털어내려는 듯하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다정함이 남아 있다고 느낀다.

  책은 1부에서 릴리 할머니와 레이먼드의 만남과 루이스의 죽음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할머니와 레이먼드의 공감과 배려에 더하여 많은 루이스들의 친절함을 만날 수 있다. 2부는 루이스를 죽인 사람의 재판 과정을 그리며 우리 사회가 편견과 혐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서술한다. 우리와 그들로 나눠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잔인하니만큼의 결정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악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남은 자들이 다정함으로 절망에서 다시 희망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언제나 함께 있다. 절망이 있어야 희망을 느낄 수 있고 불행이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레이먼드,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에서 태어난 릴리 할머니. 그들은 딱 양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양면의 좋은 점을 보다는 나쁜 점에 주목한다. 나쁜 점을 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지구를 살아가는 다 같은 생물일 뿐이다. 그 존재들이 옳고 그른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존재 그 자체로 편견과 혐오를 하지는 말아야 한다.

  위에서 얘기하는 것들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알고 있다. 단지 행동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주위의 눈치도 볼 수밖에 없다. 다정하게 구는 것이 오지랖이 되어 버린 사회. 더 나아가 다정하게 굴다가 위험에 처하게 된 사회. 사실은 이것 또한 닭과 달걀의 문제일 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다정하게 굴지 않는 나는 누군가에게 위험요소가 된다는 것도.

  이 작품은 17세 레이먼드의 성장 소설이면서 소수자에 대한 어려움을 얘기한다. 더불어 사회에 펼쳐져 있는 혐오와 편견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느 작품들과 다르게 릴리 할머니와 레이먼드의 공감과 유대 그리고 수많은 루이스들의 친절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정함이 남아 있고 다정함만이 다정함을 불러올 수 있다고 얘기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고발을 휴머니즘에 엮어 전개하는 방법은 다른 책들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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