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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 사계절

야곰야곰+책벌레 2022. 1. 1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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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청기를 사용하는 김초엽 작가와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 작가가 시사인에서 장애에 대해 적은 글을 모아 만든 책이다. 가장 놀랬던 것은 김초엽 작가가 장애가 있었다는 것이었고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사회가 다루는 장애라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꼽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굉장히 재밌는 SF소설인가 싶었다. 김초엽 작가의 글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 어떤 책인지 살펴보지도 않은 채 구매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꽤 무거운 사회적 문제이면서 소수자의 얘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느 책들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사이보그는 쉽게 풀어쓰면 인조인간이다. 기계와 인간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적인 생명체라고 하면 될까? 우리가 눈여겨보던 사이보그는 영웅적이거나 파괴적인 양면 측면에 위치하고 있다. 나 역시 사이보그라고 하면 만화나 영화 정도의 이미지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어가 가지는 정의를 놓고 본다면 나 역시도 사이보그일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보철물을 선물하였다. 단순하게 안경부터 틀니나 보청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인공 관절, 스턴트 등은 이미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것은 결국 기술의 지원을 받게 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고 그 장애의 경중이 다를 뿐 우리 대부분은 사이보그이기도 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장애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경은 이미 패션의 일부가 되었지만 보청기는 여전히 감추고 싶은 물건이었고 일반적인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은 동정 어린 시선을 받지만 아주 고가의 휠체어를 타는 것은 비뚤어진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장애를 위한 보조 기구들이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지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구부러지는 빨대처럼 간단하면서 지금 당장 삶의 질을 향상해줄 수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장애인 보조 기구들은 최첨단만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아이언맨을 위한 기술 같다.

  결핍된 A는 B나 C가 될 수 없을까? 이 질문은 두 저자의 주요한 생각이었다. 결핍된 A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일 수 없을까? 결핍된 A가 그대로 살아가거나 극복하거나의 두 개의 선택지를 내밀어 줄 수는 없을까. 장애라는 것의 부정적인 감각은 쉬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이겠지만 비장애인의 생각보다 그들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보철물에서 이물감을 느끼는 것은 애착이 형성되는 것도 더 나아가 일체화가 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은 장애라는 것이 단순히 극복해야 하는 대상만은 아님을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간의 <정상성>에 대한 추구는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지원금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에 더 많이 집중된다.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장애인의 행복은 주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장애인들의 일방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포스트 휴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만 하다. 인간은 농경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전혀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체격은 줄었고, 그 전의 체격을 회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인류의 진화는 이제 기술에 힘을 빌려 스스로 진화해야 하는 것일까? 기계를 붙이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한 <강화 인간>으로 가는 길만 남았을까? 그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의 혼란은 지금 장애인들이 갖는 정체성의 혼란과 비슷하지 않을까? (비록 그들의 생각을 이런 단편적인 글로만 읽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것일지도..)

  인간은 인간을 닮을수록 친밀감을 느끼지만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으면 적대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장애는 늘 결핍을 가진 대상이었다. 그들이 그 자체로의 새로운 존재 더 나아가 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장애는 <안스러움>의 대상이었다. 돌봄이라는 것이 필요한 존재 일 수 있지만 그들 자체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만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의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 몸으로 체화되기까지 또 긴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몰랐던 새로운 단면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김초엽 작가의 생각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녀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질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를 읽었을 때 바로 김초엽 작가가 생각났었는데, 그녀가 그 작품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소름이 살짝 들면서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잘 이해했다는)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끊어 읽을 때마다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끌어당기는 깊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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