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야곰야곰+책벌레 2021. 10. 1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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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작품을 꺼내 들었다. 너무 쉼 없는 독서를 해서인지 익숙한 글이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 정말 좋았었지'라는 기억만 남은 채 책장 한 구석에 꼽혀 있던 이 책에 손이 갔다. 좋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읽는 책은 새로 만난 책들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 있다.

  연애 소설 같은 제목에 전개 또한 그런 식이 었지만 급작스런 반전에 소름을 돋게 해 버린 작품이었다. 왜 이런 느낌을 처음 느껴 본 것 같을까. 분명 읽었던 작품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였는데 작가는 문장으로 나의 마음을 풀게 만들고 마지막에 방심한 나의 마음에 슬픔의 비수를 꼽아버린다.

  주인공인 유미코는 어딘가 달관한 모양새로 세상을 피해 최대한 게으르게 살아갈 요량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주 감정적이었던 엄마와 완벽해 보였던 이모가 있었다. 이모의 아들인 쇼이치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모는 그녀를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했지만 어째서인지 지키지 못했다.

  그런 유미코에 쇼이치가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펼쳐진다. 마녀 학교를 나온 엄마와 이모였고 엄마는 마법을 이용해서 영혼을 불러 조언을 들으면서 사업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잘못 불려 나온 영혼에 의해 그날 그녀의 엄마는 죽음을 맞이했다. 쇼이치는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지키려고 유미코를 방문한다. 유미코의 엄마가 죽음으로써 내린 저주를 풀어주라고 한 것이었다. 

  쇼이치와 유미코는 엄마와 이모의 흔적을 좇아 여기저기를 다니며 자신의 기억을 다시 맞추어 갔다. 그러면서도 쇼이치에게 기대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흔한 설정이었지만 아픔이 가득한 장소를 찾아가는 그들을 모습을 계속 지켜보게 된다. 이런 설정에서 나도 모르게 경계를 풀었는지도 몰랐다. 대부분의 아픔이 풀어지고 아빠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유미코는 이상함을 느낀다. 아빠의 무덤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었다. 모든 풍경이 끼워 맞춘 듯 완벽했다. 그리고 마침내 알아채 버렸다.

끔찍한 숙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은 거의 천국만큼이나 아름답다.
상태가 최악일 때보다는 빠져나올 때가 좋다.
하늘을 바라보다가 살아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느낀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저 먼 구름의 자잘한 틈새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역시 살자, 살아 주자고 나는 끈질기게 생각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해피엔딩일 것 같은 결말에서 일어나는 반전이다. 그런 스포일러는 할 수 없으니 이 정도만 얘기해도 그 감동은 반이 되어버릴지 모르겠다. 글을 통해서 완전히 무장해제되었을 때 느끼는 그 섬뜩함은 책을 읽은 지 12시간이 지나 후기를 적고 있는 지금도 생생하다. 

대충 보면 비참한 인생이지만,
내가 지금 여기에 좋은 기분으로 있다는 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야.

  잔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섬뜩했던 소설. 요시모토 바나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소설 더 추워지기 전에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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