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 은행나무

야곰야곰+책벌레 2021. 8. 2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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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이면서 세계 여러 문학상을 차지한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신작 <어부들>은 은행나무 출판사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수채화로 어부를 그린 커버는 너무 고급스러웠고 암울한 가족사가 끝나고 비로소 한발 내딛는 가족들의 출항을 응원하듯 책의 말미에 내용과 이어져 있었다. 사실 책 속의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부>를 굉장히 진취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비극이 일어나고 나서도 새로운 희망을 위해서 여전히 <어부>를 사용한다. <어부>라는 것은 비극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헤쳐나가야 하는 희망과 숙명의 것인 것 같았다.

  아프리카 소설은 아마 처음 읽어보는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여서 그랬는지 최근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 초반에는 쉬이 읽히지 않았다. 우선 글 속에 섞여 있는 이보어(*이보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낯설기도 했고 래퍼 같은 아프리카 고유 명사들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100페이지를 넘어서서야 비로소 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가장 특이한 점은 인물과 상황을 동물이나 곤충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 특징이 정말 잘 맞아서 바로 수긍이 가게 만든다. 독수리는 아버지, 이켄나는 비단뱀이었다가 참새가 된다. 보자는 곰팡이, 오벰베는 수색견, 소설을 이끄는 벤은 나방 그런 식이었다. 그 외에도 증오는 거머리, 행복은 올챙이. 마지막으로 동생들은 왜가리로 표현한다.

희망은 올챙이였다.
잡아서 깡통에 담아 집에 가져오지만,
맞는 물에 담가뒀는데도 곧 죽고 마는 것.

    많이 문명화 되었지만 여전히 토속신앙이 강한 아프리카에서 저주라는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 주었다. 가족들 간에 깊은 유대가 있었지만 저주를 통해 도미노 쓰러지듯 생기는 가족을 산산조각 내어 버린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증오는 거머리 같았다. 몰래 붙어 있다가 살 속으로 파고드는 떼어내려면 제 살을 떼내어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가족들의 비극이 연달아 발생하는 스토리를 읽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나마 진도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남아 있던 유대감이나 이켄나와 보자의 비극이 있은 후에도 벤자민과 오벰베는 유대가 있었고 오벰베가 집을 떠났을 때에도 형을 살고 돌아온 벤자민과 동생들 간의 유대는 남아 있었다. 증오가 쓸고 간 자리에는 여전히 사랑과 희망이 남아 있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형제 간의 보편적 연대와 가족들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증오에 끝까지 부서지지 않았던 가족을 통해서 가족의 끈끈함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에서는 질병이나 기아 등으로 가족을 쉽게 잃어서 그런 생각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많이 어두운 이야기였다. 남은 사람들의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가족을 비극을 통해서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는 얘기는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섬세한 묘사(사실 너무 섬세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너무 섬세해서..)가 좋았다. 나이지리아의 근대사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선진 국가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소재여서 신선했지만 또한 조금은 침울해지기도 했다. 그나마 마지막에 희망을 얘기하는 왜가리들 때문에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책을 덮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프리카 소설에 대한 약간의 편견도 날려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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