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천 개의 파랑 (천선란) - 허블

야곰야곰+책벌레 2021. 8. 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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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은 한국 과학 문학상 장편 부분 대상을 차지한 소설이다. 꽤 괜찮은 후기들이 많이 보여서 나쁘지 않은 책이구나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표지의 물방 모양이 왠지 알 것 같은 소설이라서 계속 뒤로 미뤄뒀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물방울 속 하늘과 구름이 보였다. 사람의 인지 능력이 참 이기적이구나 싶었다.

김초엽 작가 이후로 한국에서 출간되는 SF소설들에게는 인문학적인 부분이 많아진 것 같다. 스타워즈 같은 SF가 아니라 Science Humanism 느낌이랄까. 스케일과 재미적인 요소보다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아졌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 붉은색이라면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은 역시 파란색이다. 그것도 파스텔 톤의 파란색이다.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로봇을 통해서 풀어나간다. <태양>만이 조시를 나을 수 있게 굳게 믿었던 클라라처럼 <행복>만이 아픔을 이길 수 있다는 콜리의 생각은 많이 닮아 있다. 로봇의 신념은 고민이 많은 인간의 신념보다 더 강할 것이다. 아니 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면서도 무서운 점이기도 하다.

작품이 처음과 끝을 같은 장면으로 겹치게 만든 것은 인상 깊었다. 연극에서 하나의 막이 끝나는 것 같이 삶이라는 것에 슬레이트를 칠 수는 없겠지만, 로봇이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지만 인간의 삶도 변곡점은 분명히 있을 테니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다.

작품은 말을 달리게 하는 제한된 지능을 가져야 하는 로봇에 잘못 끼워진 학습 칩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다. <콜리>라고 불리는 이 기마 로봇은 마음을 나누는 행위를 학습 나가며 로봇 특유의 눈치없음으로 이뤄진 대화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에 돌직구를 던진다. 감추고 싶었던 마음들에 파동이 생기며 숨겨두었던 마음을 이끌어 낸다.

로봇이 던지는 질문은 철학적인 질문이 많았고, 그 질문에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로봇이 때문에 꺼리낌없이 내놓을 수 있었던 얘기들을 통해서 대비하지 못한 감동을 준다. 아픔을 가진 등장인물들 (심지어 로봇과 경주마마저도 온전하지 못한)을 하나로 엮어가는 스토리를 통해서 행복이라는 마음을 심어주는 이야기는 일분일초를 세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을 음미하며 조금은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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