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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노트(신혜우) - 김영사

야곰야곰+책벌레 2021. 7. 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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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을 받아 들고는 촤르르 넘겨 봤다. 식물도감 같은 책이라면 그대로 서재에 꼽아 둘 요량이었다. 책장이 잠깐잠깐 멈출 때마다 인쇄된 사진 대신 정성껏 그려진 파스텔톤의 식물 그림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식물 채집 후, 따라 그려 과제로 제출하던 그런 것들이었다. 정성껏 그려진 그림 옆으로는 빼곡한 글이 있었다. 저자는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왜 굳이 손으로 그렸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야 촬영 기술이 좋지 않아 그랬다 치더라도 왜 지금의 시대에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분명 저자는 식물학자 일 터인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왔다. 프롤로그를 읽고 본문에 다다르니 저자가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식물을 참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물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은 조금 생뚱맞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철학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식물로 힐링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다. 묵묵히 삶을 살아내고 있는 식물에게 사람들은 무심코 말을 걸고 또 대답하고는 한다. 그것이 설령 자신과 하는 내면의 대화일지라도 그 순간 식물은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가지게 된다.

  <식물학자의 노트>는 식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작가가 그림이라는 느린 기록을 통해 식물과 끊임없이 대화 한 내용을 적어 놓았다. 식물을 그림에 담는다는 것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여러 면을 살펴보고 개성을 파악하고 특징을 살려 그려내야 하는 작업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진으로 묘사하기가 더 어렵기도 할 것이고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식물에 대한 감정을 담기 더 좋았을 거다. 

  식물은 동물처럼 살아가기 어렵다고 삶의 터를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기후와 토양 같은 환경 조건이 자신에게 맞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또한 번식을 도와줄 수분 매개자도 필요하다. 식물은 혼자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대한 생명체인 동시에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식물은 보다 더 섬세하게 진화했다. 난초는  살아가기 위해 곰팡이의 도움을 받고 수분 매개자의 활동 시간에 맞춰 꽃을 피운다. 때로는 수분 매개자가 잘 찾을 수 있도록 냄새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꽃가루만 가질 수 있도록 특별한 구조로 수분 매개자의 진화에도 영향을 준다.

  최재천 박사는 어느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하셨다. 다윈의 진화론 중에 '자연선택설'이라는 이론이 임팩트가 있어 다들 '경쟁'이라는 단어에 집중을 했었다고. 그래서인지 세상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당연시되고 있다. 하지만 다윈의 또 다른 이론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진화하는 '공진화' 이론도 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생명체인 식물이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를 가진 생명체인 곤충과 공진화한다는 것은 최근에서야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된 것이다.

  자연의 세계는 늘 선택의 결과이고 경쟁과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세계라고 다들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진화의 방향이 '경쟁'이라는 한 방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가는 이타의 세계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른 이를 돕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자연의 섭리의 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식물을 대하게 된다면, 지구에서 살아온 많은 종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무분별한 채집/수렵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인간은 식물을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할 수 있을까? 식물은 마음의 힐링이 필요할 때만 찾는 나만의 화분 속 친구를 넘어 지구를 덮고 있는 모든 식물들과의 공존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그동안 느꼈던 식물의 목소리를 책에 담아 보여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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