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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 어크로스

야곰야곰+책벌레 2021. 5. 2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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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치듯 만난 추천도서 목록에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장바구니에 담기자마자 구매를 하게 되었다. 아마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나 보다. 수중에 책이 들어오고 나서도 바로 집어 들어 읽게 되었다.

  '낯선 나와 만나는 서늘한 순간'이라는 플롤로그는 인상 깊었다. 인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관대할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얘기를 풀어간다. '나 같은 사람 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버릇처럼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최근에도 시끌시끌했던 '갑질' 사건은 모두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라는 자기 긍정의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맞는 얘기 같았다. 나의 '갑질'이 다른 호의에 의해서 나의 잘못을 덮어버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책은 꽤 무거운 내용이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적어뒀다. 하나하나 꺼내 드는 사회적 문제는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라던지, 김누리 교수님의 여러 강의 라든지 세상의 문제를 들추는 많은 책에서 읽어서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에서 생긴 이야기로 사회적 문제를 들추어내어서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 라는 것이 조금 추상적이였지만,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저자도 이 시대를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이 책을 적은 것이라 혜안을 제안한다기보다는 자기 성찰적인 얘기가 많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이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인간은 적응형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관계와 환경은 인간을 쉽게 변형시킨다. 돈 몇푼에 치사해지기도 하고 팔은 자주 안으로 굽으며 힘 있는 자 앞에서 비굴해지기도 한다. 소심함을 착한 것으로 무책임한 것을 너그러움으로 무관심한 것을 배려라고 스스로를 포장한다. 책에서는 '모르고 짓는 죄'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알고 싶지 않은 죄' 같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해서 고칠 수도 없다.

의심하라.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너를 위해'라는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이 말에 진심이 담겨 있더라도 지나치게 될 수 있다. 관심은 집착과 학대로 사랑은 스토킹으로 변한다는 것은 순식간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다.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는 가난을 죄로 만들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좀비 공정'이라고 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비 가시화된 위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고 불행한 건 애쓰지 않은 내 책임이 되고 죽을 때까지 못할게 구는 데도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먹고 놀기만 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건 사회악이다.
가치 있는 삶을 쓰레기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이 단호함에 청년 구직자들의 자존심은 구겨지고 죄인이 된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은 거니까. 얼마나 해야 '열심히'인지는 뭘로도 잴 수 없어 더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는 우리만의 원칙을 가지고 살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불편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시만 내리기만 되던 상사가 더 이상 편할 수 없으니 서로 불편함을 가지고 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살아가는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기득권이 만들어낸 사회적 족쇄다. 그들은 이데올로기 속에 인간을 넣어두고 싸움 구경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환멸과 분노를 조장해서 싸움을 격렬하게 만들고 오직 상대를 이기겠다는 신념만 심어주고 있다. 그 밖에 있는 거대한 악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는 이런 개인적인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자기 삶 하나 온전하지 못하면서 기득권을 옹호하고 부자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늘 생각한다. 한국의 10%의 인구가 90%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부자인 사람들이 없어지면 한국은 망한다고 배웠기 때문일까. 조금 더 나눠갖는 문화가 그렇게 포퓰리즘으로 공격받아야 하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노력만으로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한 단계 위에 존재하는 사람에게 신분 상승의 끈을 내려 받는 자기 계발을 하라는 자기 계발서가 나올 지경이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면 용을 철저하게 밟아 죽일 것 같은 세상이라 더 무섭다. 그래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소신을 가지고 조금 불편한 삶 살아도 될 것 같지만, 조금 불편해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요즘이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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