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4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 생성형 AI의 시대다. 2022년 12월에 발표된 chatGPT는 우리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패러다임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의 시작이라고 할 정도다. 준비하고 있던 많은 생성형 AI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발표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것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
최대 이득, 최소 손실을 미학으로 여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산업화로 인해 이것들이 크게 확산된 이후 우리는 많은 저항들을 멈추고 그저 그 기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약속하지 않은 미래를 약속받았다고 믿어야 견딜 수 있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은 자본주의가 내놓은 것을 누구보다 빨리 취하려 하는 풍토가 생겼다. 자기 보상의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이런 세상은 근대적인 사치를 제공하고 개인의 역동성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능력을 펼칠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시스템이 원하는 재능만을 계발하라고 압박받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된 권리는 점점 회복할 수 없다. 집단적 의지가 되어 버리면 더 이상 개인의 저항은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다수가 강화되고 개인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소비사회'가 되어 버린 세상은 점점 더 강렬하게 소비와 소유를 갈구하게 되었다. 시스템이 무자비하게 착취를 감행하더라도 그저 수동적으로 방관하게 되었다. 쾌락은 쇠와 개인주의를 확산시켰고 공정과 책임감에 대해 등을 돌리게 했다. 우리가 잃어가는 다양성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저 세상이 좋아졌다고 얘기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자동화될수록 개인의 책임감 상실은 심화되면서 또한 도구화되었다. 인간은 점점 시스템에서 주변으로 밀러 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고 현실이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다. 사람보다 기술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판단다. 사람마저도 유용성이라는 가치 판단 아래 놓이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 고립된다. 감수성은 사라진다. 다른 인간과의 교류가 끊어지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알고리즘이 안내해 주는 협소한 세상, 빈약한 관점을 가질 뿐이다.
문명화는 우리를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로부터 차단시켰다. 자동화는 우리를 사회 자체로부터 차단시키는 듯하다. 사람과 얘기하지 않고 AI들과 얘기하는 많은 사람들 청소년들을 보면서 개인주의를 넘어서 고립을 선택한 듯 느껴진다. 자신의 능동성을 뺏기고 점점 더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AI의 학습은 인간의 학습과 닮아 있다. 인간의 학습은 부모와의 관계와 일상생활의 다양한 맥락을 겪으며 이뤄진다. 동시에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교육이란 사회적 공동 유산과 같은 다양한 것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경험하며 이뤄진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어떤가? 자신이 클릭한 첫 번째 영상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의 시작은 빠져나올 수 없는 취향과 학습의 강요가 될 수 있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중요하다. 독창성을 가진 타인과의 접촉은 우리의 감수성을 일깨우고 정신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새로운 관심을 제시하기도 하고 때론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일상 규범에서 벗어난 탐험은 인간에게 중요하다. 이런 열망들이 모여 문화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것에 좋아요/싫어요 같은 단순한 평가만 하고 있다. 긴 감상평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취향이 아니면 넘기고 취향만 남긴다. 무한한 선택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점점 더 편협한 세상으로 들어간다. 취향이 권력 같아 보이지만 그저 비슷한 알고리즘의 결과를 받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며칠 시끄러웠던 영화의 호불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취향은 점점 편협해진다. 예술의 영역에서 미학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확립된 자신의 심리에서 느낄 수 있는 확신. 그게 답이어야 한다. 개인들에게 외부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느끼든 그렇지 않든 알고리즘이 이끄는 여정 위에 놓여 있다. 자신이 학습은 것만이 그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신만의 진리로 가득 차면 분노가 들끓는 집단이 된다. 나의 세상을 가로막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보다 폭력이 앞선다.
인터넷에서는 종종 예전 세상과 지금의 세상을 비교하는 콘텐츠가 등장한다. 그 감상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는 것이 바로 '세련된 죽음'이었다. 다양했던 색상은 무채색이 되었고 개성 넘쳤던 디자인은 모두 심플이라는 미명 아래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멋스럽게 보이지만 똑같아지고 있다. 대중의 취향은 다수의 취향으로 모여지고 개인을 압박한다. 소비가 몰리는 곳에 공급이 몰리니 취향은 점점 더 좁은 곳으로 모아진다. 인간은 어쩌면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말은 멸종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색한 것과 마주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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