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生き甲斐(이키가이)는 삶과 보람, 가치가 결합된 일본어로 '살아가는 이유'나 '삶의 보람'을 아우르는 철학적이 단어다. 활기찬 삶을 위해서는 '살아갈 이유'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이것은 굳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 삶의 보람을 뺏는 것보다 잔인한 것은 없다. '무엇이 사는 보람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간마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정답인지도 알 수 없다.
이키가이는 두 가지 맥락으로 쓰인다. 위에 설명했듯 사라는 보람의 원천 또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과 보람을 느끼는 정신 상태 그 자체를 들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의미감'이라고 할 수 있다. 빅토르 프랑클이 말한 '시련에 대한 태도 변화' 그것은 삶에 대한 '의미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사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에게 원망을 느끼기 어렵다. 행복한 사람들은 은밀히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늘 기쁠 수 없기 때문에 삶의 보람감은 단순이 '삶에 대한 기쁨'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여러 감정의 기복과 체험의 변화가 있어야 삶은 충실할 수 있다. 체험이라는 건 결국 변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것을 사는 보람이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지나치게 강하게 되어 버리면 그것이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욕구는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위협하기도 한다. 반대로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본능적인 공격심이 자신에게 향하게 되면 자살하게 된다.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 존재의 의의는 그 자체로 가지고 있다. 이용 가치나 유용성이 달려 있지는 않은 것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인류라는 존재가 그렇게까지 중요한가를 고민해 봤을 때, 인류가 만물의 중심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 존재의 능력이라는 게 얼마나 초라할까를 생각해 보면 결국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밖에 합리화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생명을 방어할 필요가 없을 때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죽음을 목도에 둔 사람이 더 평안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더 이상의 허식과 이해타산이 필요가 없다. 정말 하고 싶은 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만 할 수 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기운 넘치는 기쁨인가. 돈이 되지 않는 일도 할 수 있는 자유. 얼마나 행복할까.
삶에는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물리적인 속박을 넘어 집착과 충동, 감정등이 있다. 어쩌면 자본이라는 것도 그것에 속하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들은 더욱더 집요하게 인간을 속박한다. 자유인 같으면서도 노예 같은 삶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자신의 자유를 발휘할 여지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스스로에게 묻다 보면 그저 그렇게 지나기도 하고 꽤나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삶의 중간중간 꽤나 황홀한 의미들도 가득 차는 시간들이 온다. 그런 이정표를 만나려고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인생 굴곡의 높은 지점에 잠시나마 닿을 수 있고 그것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삶이 우리의 '보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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