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엔스>와 세트로 구입했던 <호모데우스>였다. 사피엔스는 재미나게 읽혔지만 크게 기억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워낙 <문명과 전쟁>이 좋은 책이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좋은 책 골라내기로 한 지금의 시점에 다시 쟁여둔 좋은 책들을 격파하고 있다. <호모데우스>는 꽤나 잘 쓰인 책이다. 인류의 <절망 편>이 있다면 딱 이 책이다.
신이 되려고 하는 인간이 절망적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가 더 이상 무의미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가다움을 잃은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나는 절망스럽지 않나 싶다. 하지만 건담에 나오던 '데스티니 플랜'처럼 자신의 유전자에 딱 맞춰진 특대형 강화 개미 같은 인간에게는 희로애락이 없어져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란 의미마저 희미해진다.
인간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기아와 역병 그리고 전쟁과 싸워 왔다. 이들은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속수무책 같았던 지난날과 달리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인간의 자세는 조금 다른 듯하다. 신에게 기적을 바라던 인간은 이제 우리의 능력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변영과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과 행복 그리고 신성이 될 듯하다. 짐승 수준의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여 '호모 데우스'가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신성한 경험이며 우주 속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비로운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 불멸은 인간에게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되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의학은 인간의 자연 수명을 연장하지는 못했다. 그림에도 때 이른 죽음에서 우리는 구한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려 노력한다. 더 이상 진리는 없다. 원인과 결과만 있을 뿐이다.
과학의 발전은 (특히 생화학)의 발전은 인간을 물질 그대로 바라보고 했다. <진화론>은 인간의 가치에 대해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치며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적응했을 뿐이다. 행복이란 단어는 그저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유쾌한 감정일 뿐이다. 인간의 감정은 생화학적 조작으로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많은 규제가 생기겠지만 방향은 변하지 않을 듯하다.
행복과 불멸을 추구한다는 것은 신이 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신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을 하려면 생물학적 기질은 신처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합성은 이제 그렇게 낯선 용어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치료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치료이고 어디까지가 성능 향상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협심증,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비아그라는 발기 부전을 치료하고 있다. 성형 또한 어느샌가 미용분야가 되어 버렸다. 끝없이 젊어지고 싶은 욕망은 결국 인간을 불멸을 갈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 옛날 진시왕처럼...
과학의 발전은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냈지만 이는 처음부터 결함이 있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는 인본주의의 고집스러움은 "정확이 무엇이 신성한가요?"라는 질문에 때문에 인간을 애처로운 상태까지 살려둔다. 그리고, 만약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그것은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 그런 기술은 인간 자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늘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저 우주로 메시지를 보내는 행동도 그렇다. 지구를 멸망시켜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근대는 인간에게 여러 선택을 강요했지만 인간은 그럴싸한 방법을 늘 찾아왔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확실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인간의 경험이 의미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무의미한 세계를 위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근대는 신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이 아닌 인류에 대한 믿음을 얻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교육도 바뀌었다. 전통을 배우던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라 가르친다.
오늘날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믿지 않는 대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로 살면서도 정치적, 도덕적, 미적 가치를 풍성하게 버무려 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한다. 약물, 유전공학, 뇌자극 등을 통해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물론 통제까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면의 어디선가 만들어지는 유일한 자아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내 진정한 욕망은 그저 화학반응일 뿐이다.
인간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필요했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타당하다. 대규모 전장에서, 대량의 생산라인에서 모든 사람들은 소중했다. 사람은 저마다 가치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높은 지능과 의식은 항상 짝지어 다녔다. 하지만 이제 알고리즘은 지능과 의식을 나누려 한다. 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더 이상 사람의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지능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의식은 선택사항일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능은 AI가 월등히 높다. 명령대로 움직이는 AI가 있다면 사기를 높일 수고도 필요 없다. 의식은 이제 더 이상 필수 요소가 아니게 된다.
이제 새로운 종교의 탄생이다. 세상은 모두 데이터로 소통한다. 책을 읽고 나를 생각하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자신의 모든 생활을 데이터화해서 공유하는 것만이 데이터교의 신념이다. 알고리즘 신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것이다. 수동적인 인간은 모든 선택을 AI에게 맡길 것이다. 충실한 일개미가 될 것이다. 아니다. 그저 번식에만 이용되는 수개미가 될 뿐일지도 모르겠다.
<호모데우스>는 인간 미래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일부 초 엘리트 집단이 될 것이다. 인류 그 자체가 필요했던 과거에야 기술들은 인류를 위해 쓰였지만 더 이상 인류 그 자체의 가치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생산의 자동화는 인간을 그저 소비하는 동물로 만들 것이며 능력이 없는 인간은 사육 이상의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불멸을 가진 인간은 더 이상 가진 것을 나눌 필요도 없게 된다.
이런 미래의 <절망 편>을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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