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KA라는 단어는 지금처럼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말한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모아놓은 단어다. 이 단어는 군사용어로 전장 상황을 표현하는 데 쓰였지만 현대에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환경 변화의 불확실성이 크다 의미를 가진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더 빠르게 대응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으로 사용되던 애자일은 경영 전반의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행하는 것 대부분이 그렇듯 알맹이는 온 데 간데없고 죄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린 기법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도요타 생산 관리 기법은 TPS는 세계에서 제조업을 한다는 기업들은 한 번쯤은 교육을 받는 유명한 기법이다. 나 또한 다녀왔지만 그것을 보고 익히고 접목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TPS를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은 도요타뿐이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도요타 역시 자신이 어떻게 TPS를 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체화되어 버린 기법인 것이다.
애자일 기법 또한 마찬가지다. 애자일 선언을 바탕으로 이래야 저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애자일은 방법론이라고 할 수 없다. 애자일 또한 TPS와 마찬가지다. 모든 기법은 그것을 수행할 사람이 할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법이야 개인이 홀로 하기로 마음먹으면 되는 것이지만 기업 문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할 생각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제껏 시장을 지배하던 경영 모델은 테일러리즘이었다. 과학적 관리법이나 합리주의 경영으로 불리기도 하는 테일러리즘은 '효율'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통제와 명령, 규율 그리고 경쟁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가장 유행한 경영 기법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복잡해졌다. 효율과 합리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제껏 기업이 유행을 선도했다면 지금은 기업이 고객을 쫓아야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가볍고 민첩한 조직이 필요해진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부속품처럼 표준화된 행동만을 해서는 지금의 시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제 그것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성이 넘치는 시대에 평균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애자일이 자유로움을 얘기하지만은 않는다. 한치의 여백도 없이 빽빽이 드러 차 있던 기존의 환경에 빈틈을 만들었을 뿐이다. 여유를 만들어 긴장과 불안, 갈등으로 생기는 생산성 저하를 막고 창의성을 높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강력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다.
기업은 직원들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깔아 두되 그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가치와 비전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 애자일은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경영 환경보다 더 잔인할 수 있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뽑지 않고 자를 수 있는 엄격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자일은 큰 테두리에서 강력한 개입을 해야 한다. 조직의 가치와 눈높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경영으로는 애자일을 할 수 없다. 냉정할 정도로 '극단적인 솔직함'을 기반으로 조직의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 조직에 대한 철학과 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명제가 생존보다 앞서야 한다. 조직은 최대한 솔직해야 한다. 구성원들을 줄 세우며 평가해서는 안된다. 모든 구성원들은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채 지식, 정보, 의견, 노력을 공유해야 한다. 프로 스포츠처럼 모두가 동일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도요타 교육을 갔을 때도 그랬다.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 일하는 모습에 경영자들은 감탄했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 같은 삶을 측은해했다. 담당 강사의 말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 듯했다. 도요타 생산 방식 역시 일하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벤치 마킹하는 것은 동상이몽 속에 회사를 망치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
도요타도 60년째 개선하고 있는 그 유기적인 방법론을 한 번의 교육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하룻강아지들 같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강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애자일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경영자는 늘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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