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책마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스티븐 핑커 교수의 책들은 생각보다 잘 읽힌다. 어렵다는 느낌이 없이 뭔가 풀어써준 느낌이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읽어 나갈 때 막힘이 없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했었는데 핑커 교수가 약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 같았다. 그런 핑커 교수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어본능> 같은 언어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핑커 교수는 어떤 글쓰기에 대해 얘기할까.
글쓰기 책이 이렇게 두껍다니.. 그래도 사이언스북스의 지원으로 읽어 볼 수 있었다.
책을 고려며 간과한 것이 바로 핑커 교수가 언어학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글쓰기 책이지만 영문학 책이면서 언어학 책인 것 같다. 그리고 글쓰기가 아니라 영어 글쓰기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부제목을 꼭 봐야 한다!). 그가 영어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영어로 수많은 예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영어 문법에 영어 문법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착각을 종종 하게 된다.
언어학자답게 언어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높다. 그래서 언어 파괴라며 핏대 세우며, '요즘 것들에 대한 불평'을 거두고 본질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대부분 영어 문장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중학교 이후로 영어와 별거 중). 언어는 필요에 따라 쉼 없이 바뀌고 있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그런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그들을 대신해 또 그 작업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문법이라는 것 또한 변형을 만들어 가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철학적 문장가들은 그런 것들을 교묘하게 활용해 난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생뚱맞게 붙는 부사 같은 걸로 전혀 다른 철학적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저자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자기 내면의 열정과 즐거움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치 독자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쓰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는 것처럼 쓴다.
고전적 스타일의 작가는 글로 써 내려가기 전부터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글쓰기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여주기 위함인 것이다. 저자와 독자는 동등한 입장이며 저자는 독자가 자신이 보여주기만 하면 다 알아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작가와 독자는 대화 형태가 된다.
반대로 지식의 저주는 독자가 저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훌륭한 사람들이 나쁜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독자의 입장이 되어 노력해 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이 목표로 하는 독자층과 비슷한 지인에게 글을 읽게 하는 편이 낫다. 그럼에도 지식의 저주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왜냐면 쉬운 말을 쓰면 풋내기, 애송이 같은 느낌을 동료에게 보이는 것이고, 전문용어를 일일이 풀어쓴다면 오히려 독자를 무시한다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뻔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가르치려 드는 작가의 이미지보다 독자를 헷갈리게 할지언정 주제에 통달한 작가라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에게 편집자가 필요한 것일지도.
문장을 짧게 써야 하는 것은 많은 책에서 얘기하고 있다. 그것은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는 것 외에도 더 많은 미덕이 있다. 작가가 문장에 단어 하나를 더할 때마다 독자에게는 인지적 과제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짧은 문장들은 주제를 먼저 제시하면 독자에게 더 선명하게 다가갈 수 있다.
말하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리듬은 글 쓸 때에도 유용하다. 그것은 문장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작가가 자신의 글을 중얼중얼 읽어 보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자신의 문장이 낯설어질 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 읽어보면 잘못된 지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문장의 부호를 사용하면 독자가 글을 읽을 때 잘못 해석할 여지를 줄여 줄 수 있다. 단락 구분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 책갈피와 같다. 독자는 잠시 쉬며 그동안의 내용을 소화할 수 있고, 다시 읽기 시작할 지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성 중립성 때문에 he나 she 대신에 they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때 they는 단수가 된다. 단수형 they는 셰익스피어도 최소 네 번을 사용했고 제인 오스틴의 경우 87번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단수형 they는 단순히 성 중립적 의미를 넘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문법적으로는 단수지만 심리적으로 복수인 경우다. 우리나라 영어 시험이라면 바로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용법이지만 뉘앙스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영어 글쓰기에 대한 얘기지만 글 쓰는 기본적인 마인드에 대해서도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일반적인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논문이나 학술서적 같은 글쓰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더 나아가 영문 글쓰기를 한다면 더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글쓰기 책이었지만 어원을 분석하고 고전적은 문법과 현대적인 활용들을 나열한다.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가. 감성적인 설명이 아니라 학자다운 설명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언어가 파괴되고 신조어가 넘쳐난다. 그것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글 쓰는 것은 언제가 어려운 문제다. 단지 글을 잘 쓰려면 좋은 글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상상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글쓰기의 규칙 보다 문장과 문장을 매끄럽게 이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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