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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앤디 돕슨) - 포레스트북스

야곰야곰+책벌레 2024. 5. 2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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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덩치가 힘겨웠는지 지금의 고래는 물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래는 아가미로 숨을 쉬지 않는다. 물속에서 살아가려면 아가미가 있는 편이 좋을 텐데, 고래는 긴 시간이 지나도록 아가미를 갖지 못했다. 

  생명의 다양함과 오해 없는 자연선택을 설명하기 위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은 포레스트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진화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생물이라는 것은 무언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닌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만이 번성한다는 것이다. 모든 개체는 자연에게 생존에 대한 압력을 받고 이것을 견뎌낸 개체만이 자연의 선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가장 잘 적응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적자생존'은 한때 '사회 진화론' 혹은 '우생학' 같은 것으로 학문에 이용되기도 했다. 인간의 잘못된 해석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화'라고 하면 더 우월한 개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 인간은 날지 못하기도 하고 물속에서 숨을 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추위를 맨몸으로 견뎌낼 수도 없다. 그저 지금 환경이 인간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것이고 지능이라는 꽤나 괜찮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서다. 

  동물은 늘 시대착오적이다. 환경이 변해야 선택압을 받기 때문이다. 변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동물이 시대에 뒤처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환경은 때론 생각보다 급작스럽게 변한다. 지구를 호령하던 공룡들은 운석 충돌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인간이라고 해서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큰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책은 여러 종류의 진화 패턴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진화라는 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얘기한다. 그리고 진화라는 것이 이기적인 것도 이타적인 것도 다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얘기한다. 진화는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흔적 같은 것이라는 듯하다. 인간의 기준으로 인간을 최고의 동물로 추켜 세우는 오만함에 대한 경고 같기도 했다.

  진화에서 성공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인간은 늘 비슷한 크기의 생명체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우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개체로 봐도 인류는 닭장의 닭보다도 적은 개체 수를 가지고 있다. 미생물까지 끌어드리면 인간은 아름드리나무의 열매 하나도 될까 말까 하다. 마음대로 살아간다거나 행복하게 살아간다거나 같은 판단은 애초부터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비교할 수 없다. 인간도 그저 흐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유전자의 확률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우월한 유전자도 특별하게 다정한 유전자도 없다. 그저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가 매 순간 자연에게서 받은 선택압을 견뎌내는 것에 불과하다. 유전자가 단순히 자신을 보존하는 일에만 급급한 것이었다면 인류의 남성들은 모두 정자은행에 기부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데 또 그렇지가 않다.

  유전은 하나의 흐름이며 자연의 선택압 속에 결정된 경로는 되돌릴 수 없다. 물속에서 육지로 올라와 폐를 얻은 동물은 다시 물로 돌아갔을 때 아가미로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살아갈 만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생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약점을 개선하는 돌연변이는 우월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개체의 행동은 여러 가지 선택압에 대한 결과다. 우리는 가끔 자연스러운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그리고 전혀 우월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애당초 우월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저 다양한 결과만이 존재한다.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생명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여러 이유들에 정당함을 생물학으로는 지지받을 수 없다는 듯했다.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세심하게 설명하지만 더 재미난 예시들이 가득해 읽는 즐거움이 있다. 진화를 있는 그대로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은 만족을 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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