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법정유희 (이가라시 리쓰토) - 리드비

야곰야곰+책벌레 2024. 4. 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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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인!"

  내가 좋아하던 '역전재판'은 늘 변호사의 단호한 말로 시작한다. 피고인은 늘 불리한 입장에서 기소를 당해 법정에 선다. 변호사는 단서를 찾아 검사의 논리를 부셔야 한다. 현실은 법을 어긴 사람을 법망에서 탈출시키는 법꾸라지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의로운 법률가들을 상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또 하나의 즐거운 법정 미스터리다.

  현직 변호사인 작가의 해박한 법정 지식과 긴장감의 강약 조절로 마지막까지 즐거웠던 이 소설은 리드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판사가 결정하지만, 원죄인지 아닌지는 신밖에 모릅니다'

  이 스토리의 기저에 깔려 있는 '무고'는 법 집행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해 결국 죄인이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시간이 흘러 무죄가 인정되기도 하지만 옥살이를 한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작품은 '미스터리'이면서도 법률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얘기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동태복수원칙이다. 이야기의 판을 짠 유키 가오루는 이를 복수가 아는 관용이라 얘기한다. '이 정도의 벌로 용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는 것이다.

  문제를 낸 것은 유키 가오루지만 풀어가는 것은 세이기라는 별명을 지닌 구가 기요요시다. 세이기는 일본어로 '정의'라는 뜻이다. 사법시험이 이미 합격하고도 로스쿨에 입학한 가오루 다음의 수재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그가 지켜야 할 히로인으로 오리모토 미레이가 있다.

  기요요시와 미레이는 같은 시설에서 자랐으며 기요요시는 미레이를 어둠에서 구해준 영웅과 같은 입장이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읽기 전까지 풍기는 분위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었다. 여주인공을 구하고 그림자가 되어 버린 남자의 이야기. 하지만 작가는 둘 사이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제공자이면서 풀어야 할 사람이며 동행보복의 대상자인 두 주인공은 해결사가 아니라 갱생의 대상이다.

  법률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세상에 대처하기 더 수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기요요시와 그를 따른 미레이.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행했던 합법과 위법 사이의 줄타기. 그 속에서 피해자가 생겼다. 사법 시험을 합격했음에도 삼류 로스쿨에 입학한 유키 가오루. 뛰어난 법률 상식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그는 '무고게임'을 만든다. 모든 것은 그가 만들어 놓은 멋진 한판이었다.

  이야기는 대학생의 유희 정도로 볼 수 있는 '무고게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무고'를 주장하는 진짜 법정까지 이어진다. 세상의 법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낙인찍히면 그대로 관심에서 사라지는 그런 고통을 가해자와 심지어 나라의 법률가에까지 묻고자 하는 이 작품의 짜임새는 치밀하다. 차분히 시작해서 반전의 반전을 가한다. 예상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반전을 만들어진다. 그리고 정의로운 결말을 이른다.

  '최소한의 법'. 법률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을 거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회피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법률가들이 신이 되려 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인간은 늘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속에 법 이전에 양심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법으로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재판장에서 재단되는 죄의 유무 판별도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죄를 누가 용서하냐라는 질문은 지금도 자주 듣는 말이다. 가해자가 행한 범죄는 피해자가 원하는 수준인가?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벌을 내린 판결을 보게 된다. 미성년자 성폭행이 그렇고 경제사범이나 권력자들의 죄가 그렇다. 게다가 사면이라는 제도는 약한 자를 위해 쓰인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법정은 무슨 근거로 그걸로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작품은 그런 원론적인 질문을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굉장히 잔인하면서도 명확하다. 내 눈을 잃었으니 너도 눈을 잃는다면 용서하겠다는 관용의 법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것만큼 억울하지 않을 일은 또한 없을 듯하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으니 검사도 판사도 더 나아가 나라의 법률 시스템도 동일한 죄를 뒤집어쓰라라고 하는 복수는 오히려 이성적이게 느껴질 정도다. 

  슬픔만이 가득한 내용에 지나치게 이성적인 짜임새 그리고 갱생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답을 내어놓은 작품. 뭔가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더할 나이 없이 재밌게 쓰인 책이다. '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죄가 없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인지 가해자가 숨을 수 있는 법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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