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에는 <우리들>, <1984> 그리고 이 책이 있다. 세 작품이지만 이 책과 <1984>는 자주 비교가 된다. 비슷한 메시지를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4가 억압과 기만을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이 작품은 쾌락을 사용한다. 전체주의라는 정의라는 것이 꼭 빅브라더 아래서 강제되는 삶만을 얘기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유토피아 또한 디스토피아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독재와 사회주의는 모두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만 존재하는 세상은 지옥이 아닐까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은 소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작품 속 영국은 소마라는 약물로 안정을 최우선하는 사회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으며 계급별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모든 것은 모두의 소유여야 한다. 인간 그 자체마저도 말이다. 인간은 최대한 비슷해야 하기에 많은 쌍둥이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한다. 생명 과학은 계급 별로 그 모습을 다르게 만들 수 있고 정신 교육은 그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변화가 업는 사람. 결핍과 분노가 지워진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마치 유전자 재배열이 가능할 머지않은 세상을 덮칠 사상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는 기분이 들 정도다. 거대한 시스템의 한 축이 되어 조금도 벗어나지 않도록 삶을 유지하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등장인물이다. 문명화된 세계에 야만인 존을 데리고 오는 자의 이름은 사회주의 철학자 '마르크스' , 이 세계를 조율하는 관리자는 이슬람의 선지자인 무스타파,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파고드는 이는 감각 생리학의 창시자 헬름홀츠, 가장 육감적인 여성으로 등장하는 레니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생각나게 한다. 야만인의 이름으로 존, 문명에서 내쳐진 여성의 이름이 린다 인 것은 오래된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게 행복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무스타파와 존의 대화를 살펴보면 그런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식량 걱정도 일에 대한 걱정도 완벽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일을 줄인다는 것은 여가에 대한 새로운 걱정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일에 빠져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쩌면 행복은 콩국수에 들어가는 작은 스푼의 소금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어느 한쪽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행복은 어느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변화량이다. 오르막이 있어야 내리막이 있는 것이다. 끝없이 넓은 평지를 걷는 것만큼 지겨운 것도 없다. 유토피아라는 것은 어쩌면 예쁜 지옥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전에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읽고 비슷한 이야기를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읽는 동안 내가 써보고 싶은 글을 펼쳐놓아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라고 많이 배웠다. 작품 자체는 잔잔하지만 그 속에 위트가 있고 묵직한 메시지도 있었다. 그리고 너무 재밌다.
그리고 군중심리의 무서움과 혁명의 어려움 또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수의 횡포일 수도 있고 정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꽤나 고전이지만 SF소설 같았고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일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닌 듯 한 디스토피아.
무수히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근본은 전혀 바뀌지 않는 변화를 변화로 인식하며 그 속에서 쾌락을 좇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투영해 볼 수도 있다. 쾌락적이지 않은 것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느끼는 지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왠지 몇 번이고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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