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 푸른숲

야곰야곰+책벌레 2023. 12. 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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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인을 매몰차게 공격하는 학자 중에 한 명이다. 그의 저서들은 과학으로 종교를 부정한다. 종교라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타인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기 위해서는 신념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종교는 제국을 만들었고 왕은 신이 되고자 했다. 종교는 권위가 되었고 필요 이상의 힘이 되었다. 

  존재의 이유는 종교가 아니라 행복이라고 얘기하는 알프레도의 말처럼 죽음, 사랑 그리고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푸른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의 장르가 오묘하다. 일단 스릴러임은 분명하다. 종반부에 드러나는 사건의 재구성에서 느껴지는 역겨움은 하드보일드한 장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는 조금 다르다.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광신에 대해 비판한다. 어쩌면 이 책은 종교 비판적인 책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대를 근대로 설정함으로써 페미니즘의 분위기도 가지고 있다. 

  가볍게는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신을 믿는 집단에 있을 때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종교는 꽤나 폭력적이다. 적어도 지금의 종교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종교를 행하는 자 또한 그 의문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고행과 수난은 수행자의 기본 값이기 때문이다. 복종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거친 폭력이다. 

  초입이 굉장히 난해하다. 책은 꽤나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주위의 잡음소리에도 이야기가 끊어져버리는 느낌이다. 마치 소곤대는 소리 같다. 비밀을 얘기해 줄 듯 알듯 말듯한 얘기들이 전개된다. 어느 하나 확신을 들지 않는다. 화자 별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 좋았다. 각자의 얘기는 묘하게 잘 섞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초반의 느슨했던 이야기는 마르셀라의 이야기에서 긴장감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법의학자의 독백과 같은 구성으로 범죄는 점점 풀려나간다.

  이 작품은 종교를 넘어 인간의 근원적인 믿음에 대해 얘기한다. 자신의 죄를 신의 뜻으로 돌려버리는 무책임감은 (내가 고해성사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깊은 빡침을 준다. 그리고 그런 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여성의 모습에서 자신의 행복이 완전해야 한다는 믿음도 보였다. 나르시시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지부조화라고 해야 할까. 인간은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인간은 나약해지고 기대고 싶은 존재가 필요할 때 신을 만들어 낸다.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도 위급한 상황 앞에서 모두 기도하게 된다. 믿음이라는 건 순진한 자기 속임일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종교인이 부러운 때가 딱 한 번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을 앞두고서라고 했다. (물론 죽음을 축복으로 여기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겠지만..) 인간은 나약하니까 언제든 종교가 파고들 틈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지독한 믿음으로 출발한 슬픈 사실은 끔찍한 살인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다. 믿음에는 행복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마르셀라와의 대화를 통해 늦은 나이에 진정한 사랑을 한 알프레도의 모습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필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랑임을 얘기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르셀라의 필기 마지막에 남겨진 하트는 또 다른 따뜻함을 내보여 준다.

  온갖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얘기로 읽기 힘들 수도 있다. 작가는 중간중간 작은 기쁨의 장치를 심어 놓음으로써 독자를 격려하는 듯하다. 훌리안 편에서는 깊은 빡침을 카르멘 편에서는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프레도의 이야기로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마무리한다. 

  작품은 범죄 해결을 위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미제로 끝난 사건의 주인공들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옮겨두고 내면의 마음을 풀어낸다. 범인이 누구고 어떻게 살해된 게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작가는 죄의 무게와 잘못된 믿음의 결과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신 보다 인간의 사랑의 귀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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