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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수잔 시마드) - 사이언스북스

야곰야곰+책벌레 2023. 12. 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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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에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 그것은 모두 바닷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 속에서 탄생한 시아노 박테리아는 산소를 만들어 냈고 산소 대멸종을 가져왔다. 지구는 산화되면서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육지 있던 진균은 식물을 육지로 안내했다. 이 오랜 관계는 인간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인간만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식물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아바타에 영감을 준 '우드 와이드 웹'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이언스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판타지 게임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세계수>다. 세계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세상의 균형을 맞춘다. 그런 상상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것일까? 인류는 오랜 시간 큰 나무를 숭배하는 행위를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당산 나무라며 영이 깃든 나무라며 귀히 여기곤 했다. 그런 나무들은 정말 카니발리즘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 대한 예의일 뿐일까.

  식물과 숲은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중요하다.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 줄 뿐 아니라 탄소를 가두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거대한 숲은 그 자체로 세계의 균형추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돈만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많은 나라들은 고대 인류가 그랬듯 숲을 태우고 밭을 만든다. 조금 더 발전한 나라는 숲을 태워 공장 부지를 만든다. 하지만 그들만 탓할 수만은 없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요구했고 선진국들은 제3세계를 지원하여 자연을 보호하겠다던 <파리협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모두 경제성이라는 편협한 카테고리에서 분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임업이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 아니지만 캐나다나 북유럽의 경우에는 나무를 기르는 것이 하나의 산업이 되어 있다. 다 자란 나무를 그저 베어 파는 후진국과 달리 이들은 돈 되는 나무를 얼마나 빨리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대체로 농업과 비슷한 형태로 이뤄진다. 단일 품종을 파종하는 것이다.

  단일종으로 이뤄진 곳은 취약함이 너무 심하다. 하나의 병충해로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길어도 한 해 농사라면 그럴 수 있지만 수십 년 농사인 나무의 경우에는 그 하나하나의 손실이 막대하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계속 보살펴야 하는 숲은 경제성이 없다. 자연 스스로가 치유하며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과학은 패러다임의 변화로 성장한다고 '토머스 쿤'은 얘기했다. 숲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연선택설을 편협하게 해석한 나머지 인간은 '경쟁'에 초점을 맞추었고 무엇이든 싸워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사회로 흘러들어 '우생학' 같은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자세 살펴보면 인간들은 경쟁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기꺼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기도 한다. 유전자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 본능에는 유전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도 마찬가지였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처럼 최근 과학은 공진화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생태계의 많은 생물들은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거대한 군집인 식물은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곤충과 협력하고 있다. 그런 이면에 압도적인 수의 미생물과 협력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것이다. 많은 미생물은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고 있다. 식물 또한 많은 균사들과 협력하며 질소를 공급받고 광합성의 결과물을 나누고 있다.

  식물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생성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우월주의는 '인간이 아니면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인간을 편협하게 만들었다. 숲 속에서 나고 자란 저자와 같은 사람이 존재했기에 자연에 감사하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식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땅속에 있는 진균들이다. 무수하게 얽힌 균사들로 그들은 소통하고 있다. 거대한 나무는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내어 준다. 병충해에 당한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물이 많은 날에 머금은 나무는 가뭄이 들면 다시 내어 준다. 숲 속의 나무들은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안다. 배부른 박쥐고 배고픈 박쥐에게 먹이를 게워주듯 나무들도 그렇게 영양분을 나눠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고 그들을 어머니 나무라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나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탄소 포집을 위한 활동으로 나무를 키우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나무가 일정 나이가 되면 베어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 그 나이를 넘어서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내가 보기엔 마치 나이 든 부모를 내다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거대한 나무가 숲에 기여하는 방법을 저자는 알아내고 있었다. 숲이라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 속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같은 종만 모여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이다.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는 결국 또 자연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식물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적어도 숲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들의 치유 능력을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원인을 제대로 찾으려 하지 않고 눈앞의 상처만 도려내는 것이 방법이 아님을 다들 알고 있지 않을까? 

  자연은 이렇게 다양성과 연대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경쟁을 접어두고 공유와 연대의 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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