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기존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예술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파악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 안에는 디자이너의 스토리텔링이 들어 있지만 예술가 본연의 모습을 헤치면 안 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콘셉트뿐 아니라 분위기와 동선에서 신경 써야 한다. 디자이너의 얘기는 큐레이터의 얘기와는 또 다른 것을 알아 갈 수 있다.
공간과 관객의 사이를 채우는 일을 하는 전시 디자이너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소동 출판사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한 장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예술은 관객의 눈과 귀에 닿아야 진정한 예술이 된다"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것을 모두 표현하려 노력하지만 관객의 눈과 귀에 닿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다. '판'을 까는 직업. 그것을 전시 디자이너라고 한다.
전시는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은 듯하다. 우선 예술가가 대중에게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유명하다면 철저하게 예술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훌륭하지만 대중에게 낯선 예술가의 경우 그들을 드러내기 위한 디자이너의 고뇌는 조금 더 깊어지는 듯하다. 디자이너는 예술가에게 깊은 공감을 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작품을 이해한 뒤 전시를 디자인하게 된다. 예술가의 철학을 전시에 반영하려 노력한다.
그들의 노력은 누구의 평가가 더 의미 있을까? 예술가가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면 관객의 호응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예술가가 살아 있다면 예술가에게 받는 호평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기도 할 듯하다. 타인의 작품이 돋보이게 하는 작업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러 전시회를 예를 들어가며 전시 디자이너로서 고민한 부분과 해결한 내용을 적어나가다 보면 전시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전시회라는 것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도 약간의 공식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알게 되어 세상 사는 곳 다 비슷하고나 싶었다.
전시 디자인의 얘기지만 공간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지 않을까 싶었다. 전시회라고 가면 후다닥 지나기 바쁘다. 물론 디자이너의 노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렇게까지 고민했구나 생각이 들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공간과 작품은 언제나 있었고 그것이 전시 디자이너의 힘이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참 좋은 전시회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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