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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 세밀화

야곰야곰+책벌레 2023. 11. 2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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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교의 주된 교리는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다. 신만이 세상에서 유일할 수 있고 인간은 그저 지나가는 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의 호의호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이스탄불에 화려한 건축물이나 미술물이 없다는 것을 그것을 반증한다. 그중에서 세밀화는 당시의 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의 주요한 특징은 마치 신이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다는 듯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림은 대부분 평면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후 유럽에서 유행한 인간 중심의 시선 처리를 한 '원근법'이 유행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몇몇 술탄은 유럽의 화가들을 오스만 제국의 궁정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는 사실주의에 가깝다. 소재와 인물을 미화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사랑 장면을 소재로 삼지 않으며 주로 전투나 행렬 장면 또는 축제 장면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섬세함보다는 묵직하고 투박한 특징을 보이며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조화가 중시되는 것이다.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 앙드레 클로, w미디어, p484

  세밀화는 어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을 촘촘하게 그려내는 것이지만 그림이라는 독립적인 예술이라기보다는 글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주는 것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세밀화는 물감, 금박, 은박을 사용하여 그려졌고 이야기를 이루는 그림들은 화집으로 모아지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 또한 셀주크 시기처럼 술탄, 귀족등의 후원자들은 궁중화원(나카시하네)을 만들어 화가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이들은 삽화를 그리거나 채색을 할 뿐만 아니라 도안이나 문양등의 밑그림도 제공했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더 많은 부족과 문화가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다인종, 다문화를 인정했던 오스만의 정책 덕분에 통일된 화풍이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서예가가 텍스를 옮기면 채식자가 표지와 여백을 도금하고 색칠한다. 그다음은 화가의 몫이 되었다. 오스만의 세밀화는 정해진 주제를 표현해야 했지만 그 표현법이나 새로운 형태로 발전되었다.

  세밀화는 제국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발행되었다. 제국의 위기를 역사서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음이다. <내 이름의 빨강>에 등장하는 나카쉬 오스만은 이 시기 활동했던 가장 중요한 화가로 오스만 회화의 전통을 확립한 대가다. 그는 정형화된 술탄의 모습을 만들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티자미의 <축제의 서>는 실재 배경에 실재 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다.

  이후 오스만 미술은 단조로운 작품들만 등장한다. 다룬 베흐비의  <축제의 서>를 통해 오스만 회의 마지막 전통을 지켜냈을 뿐이다. 그 후로는 어떤 작품도 오스만 미술이라 불릴만한 것은 없었다. 오스만 미술은 제국과 함께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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