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초에 누군가에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하지만 넌 시골에서 산 적이 없잖아?"라고 대꾸했습니다. 시골의 삶, 가난한 터키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문학 역시 이러한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쓰고 싶었습니다. 나의 출신인 중상류층, 부유한 삶 혹은 이스탄불 부르주아의 삶 그리고 역사 분야가 관심사였지요." (오르한 파묵, 이난아, 민음사, p33)
오르한 파묵은 1952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이스탄불 내에서도 상류층이 거주하는 니샨타쉬 구역에서 태어난 그는 부유층 출신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나 십 대에 사랑하던 여인의 아버지가 화가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며 유학을 보내버리는 사건이 영향이 있었는지 그는 화가를 포기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건축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건축학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 그는 자퇴를 하고 글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세월을 보내는 6년 뒤 그는 첫 소설 <어둠과 빛>('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로 등단한다.
수상 경력
- 오르한 케말 소설상, 밀리예트 문학상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 마다마르 소설상, 1991년 유럽 발견상 (고요한 집)
- 프랑스 문화상 (검은 책)
- 터키 문학사상 (새로운 인생)
- 최우수 외국 문학상, 그란차네 카보우르 상,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 (내 이름은 빨강)
- 프랑크푸르트 평화상, 메디치 상, 노벨 문학상
파묵의 글쓰기에서 도드라지는 점은 바로 집요하게 쓴다는 점이다. 그는 하루에 1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글을 쓰지만 하루에 0.98장 밖에 쓰지 못하는 자신이라며 소개한다. 치열하게 쓴 만큼 치열하게 퇴고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365일 내내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분명 하루 평균 0.98장은 적은 양은 아닐 것이다. 이런 그의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작가의 덕목으로 재능과 공상하는 능력을 뽑지 않는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내다.
파묵이 정의하는 작가는 '글 쓰는 게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다. 글만 쓰고 살더라도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를 감동시키는 사람이며 그것을 위해 개미처럼 조금씩 부지런히 그 거리를 좁혀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를 '바늘로 우물파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때 화가를 꿈꾸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작품은 치밀함을 가진 설계도 같은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세밀화처럼 묘사의 디테일함을 느껴지는 문장을 구사한다. 그는 장편을 쓰게 될 때에도 순서대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의 작가라면 '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쓰겠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한 분량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 퍼즐을 하듯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작품 속에 가져다 놓는다. 꼼꼼한 사전 조사로 만들어진 작은 조각들로 거대한 서사를 쌓아 올린 그의 작품에는 견고함이 있다.
파묵은 한 기자 간담회에서 "소설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라고 했다. 소설은 인간의 삶, 작가의 상상력 그리고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세계적인 작가는 멋지면서도 인간적인 소설로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의 자부심에 걸맞은 노벨 문학상을 54세(2006)의 다소 젊은 나이에 수상함으로써 자신의 소신을 증명해 냈다.
소위 있는 집 자식으로 부모의 기대가 컸겠지만 팔 년간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과 반대를 이겨내며 인내와 신념을 가지고 읽고 또 썼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파묵조차 가장 어려웠던 것이 터키에서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 것이었다고 하니 등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밀리예트> 신문 소설상과 오르한 케말 소설상까지 수상했지만 유행하고 있던 주제와 멀어 출간에 삼 년이나 걸렸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을 쓰길 바란다"라고 얘기하는 파묵은 자신도 자신의 작품에 가족들을 자주 등장 시킨다. 귄뒤즈(아버지), 세큐레(어머니), 셰브케트로(형) 그리고 자신 오르한까지. 그의 작품에는 늘 비슷한 가족들이 등장한다. 또한 그는 역사를 좋아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에서 역사소설인 느낌이 있다. 구체적 사실 위에 허구적 요소를 적절히 버무리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자신의 대한 내용이며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이 된다. 동양과 서양이 버무려진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서 끊임이 고민했을 파묵은 '너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녹아있는 폭력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서양인도 아니며 동양인도 아닌 자신은 자신일 뿐이다. 변할지 말지는 오롯이 자신의 의지에 있을 뿐이다. 정체성을 묻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얘기하는 파묵에게 동서양의 문화가 남아 이스탄불에 대해 쓰는 것은 스스로가 답을 찾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과 동양, 근대와 반근대 그리고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스탄불에 스며드는 근대화를 보며 그가 느낀 '비애'. 그것은 거대한 제국 '오스만'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린 약자에게 주어지는 낙인 같은 것일까. 몰락한 도시는 불만족스럽고 몰락시킨 서양은 대단할 거라는 착각을 벗어던지려는 듯한 그의 몸부림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세계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던 술탄처럼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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