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6월의 폭풍 (이렌 네미롭스키) - 레모

야곰야곰+책벌레 2023. 11. 1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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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출신의 프랑스 작가. 유대인이었기에 겪었을 핍박과 결국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 생애는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작가는 원고가 든 가방을 출판사에 맡겼고 그녀의 딸들은 그것을 지켜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나온 작품은 빛을 보게 된다.

  전쟁 속에 마주하는 군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레모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전란에 대한 얘기다. 프랑스 파리로 들여 닥치기 직전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전쟁이라는 것의 위기감과 함께 그 속의 사람의 심리를 묘사한다. 그렇게 많은 세월의 간극을 두고 있지 않은 양차 세계대전은 두 번의 전쟁을 겪은 이와 처음 전쟁을 겪은 이의 반응 차이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파리에 살고 있는 부르주아들의 피난 모습은 어떨까?

  그냥 소설을 대하듯 페이지를 넘겼다. 아무리 읽어도 스토리 라인을 잡을 수 없었다. 잔인하고 참혹한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물론 다른 경험들이 포개져 그럴 수 있겠지만 작품은 그렇게까지 부산스럽지 않은 피난 준비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전쟁의 참혹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체통을 잃지 않으려는 귀족들, 뻔뻔하고 의리 없는 부자들의 모습이 웃기게 다가올 수 있지만 되려 그들의 모습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굉장히 부산스러울 것 같은 곳의 모습은 절제하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비춘다. 마치 한 편의 르포를 보는 듯하다.

  문자로 구성된 이야기지만 '영상미'가 좋다고 리뷰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들의 상황과 심리가 머릿속에 팍 하고 나타날 정도랄까.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어느 한쪽을 비추고 내레이션 한 뒤 바로 다른 쪽을 비춘다. 그리고 곧바로 내레이션이 따라붙는 기분이 든다. 작품은 이어지는 스토리가 아닌 그 하나로 뭉쳐진 이야기다.

  피난길에서도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 기밀문서를 흘리며 허겁지겁 도망가는 정치인들. 휴전이라는 단어에 바로 적군과 놀아나는 여성들. 그 속에서 영웅을 찾아내기 바쁘겠지. 위선과 파렴치함이 남겨진 풍경들이 있다. 죽는 순간까지 체통을 잃지 않으려는 부자와 결국은 현실을 인정하는 사람의 모습도 있다. 누군가는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 헤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그 전쟁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한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몇몇에게 다시 돌려준다. 그것은 불공평함이 아닌 슬픔이다. 행운으로 표현하기에는 전쟁은 너무 참혹하다.

  전쟁의 어떤 판단도 없이 전쟁 그 자체를 묘사하는 작품은 잔잔하면서도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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