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늘 다음 해를 전망하는 책이 쏟아진다. 예전에는 10년 50년 단위로 전망을 내어놓았지만 지금은 한 해를 예측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물론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은 분명 필요하지만 당장은 내년의 소식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길이 잘못된 방향이 아닌가 잠깐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금 더 미시적이다. 기술적 트렌드가 아니라 비즈니스에 집중했다. 그래서 경제 뉴스를 유심히 봤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내용들이다. 한 해의 경제 총정리 같은 이 책은 베가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경제를 하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꽤나 냉정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팬데믹과 미중 무역 갈등으로 시작된 글로벌 벨류 체인의 붕괴는 무난할 것 같았던 경제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대해 러시아는 무력으로 저지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고 서방 세력은 즉각 제재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러시아의 천연자원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못해 세계 경제는 또 한 번 덜 썩였다.
이런 분위기 속 외교는 줄타기와 같다.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싸우지만 둘의 무역 거래는 오히려 늘었다. 유럽은 미중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며 이득을 취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 제재는 결국 유럽에게 폭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줄타기를 거부했다. 경제는 세상의 모든 것이 엮여 있어 어렵다. 이제는 일기예보 보다 더 믿을만한 게 못될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현재 상황을 꼼꼼히 적어두었다. 아직은 덜 익은 혹은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산업이나 기술보다는 당장 먹고살만한 것에 집중했다. 저자가 월가에서 지내서 그런지 애널리스트 리포트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 산업 동향이라고 보면 더 적절할 것 같다.
책의 전반부에는 세계의 상황을 간략적으로 설명한다. 중국 리스크는 독재라는 정치 체제와 세계 최강을 내어놓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알력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달러를 자기 마음대로 찍어내고 또 자기 마음대로 디폴트를 선언하려고 하는 미국의 모습이 개그 같지만 팬데믹이 지나 덮친 인플레이션은 세계 경제의 문제임은 분명하다. 팬데믹과 홍콩, 대만 사태에서 보여줬던 중국의 고압적 태도는 기업들의 탈출을 가속화시켰고 중국 내부의 경제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전 정부가 추진한 아세안을 고려한 신남방정책,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를 고려한 신북방정책은 그런 면에서 탈 중국을 준비하는 자세이기도 했다. 지금은 되려 미국에 고립되는 듯한 모습이라 조금 안타깝다. 그리고 언제나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는 인도와 화석 에너지의 힘이 끝나기 전에 경제 전환에 힘쓰고 있는 중동의 오일 머니는 우리가 노려도 될만한 거대한 시장이다.
세상이 전쟁 속으로 들어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분단국가의 특수성으로 만들어낸 무기 기술은 전 세계로 팔려 나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과 남한 두 나라가 세계 전쟁의 주축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본다. 그 외에도 저출산-고령화 문제, 가게 대출 문제도 예사롭지 않다.
책은 파트 2에서 현재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현주소와 대책에 대해 정리해 두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산업, 방산, 모빌리티, AI, 건축, 원전, 재생에너지를 설명한다. 파트 3은 잘 풀리지 않고 있는 산업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리한 자료를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게 보는 부분도 있고 더 나쁘게 보는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바이오산업의 소부장 쪽에 관심이 생겼다. 국산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니 기회가 있을 듯했다. 배터리는 중국의 CATL을 과소 평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중국 자동차 BYD의 기세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태양광 산업 또한 중국 점유율이 80%며 셀의 핵심 소재는 97%가 중국이다.
소형 원자로 SMR에 대해서도 정책 기조가 바뀌었으니 해 볼만한 산업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SMR이 핵잠수함이나 우주선 추진 엔진으로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애초에 효율도 낮고 폐기물도 여전히 생기는 기술. 그리고 잠수함처럼 실거주지 바로 옆에 두어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다. RE100으로 가는 추세를 CF100으로 하자고 하는 게 우리만 외친다고 될 일인가 싶다. RE100을 선언한 삼성전자를 걱정한다면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쪽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책이 미래보다 현재를 적고 있다 보니 현실감이 확확 와닿았다. 미래의 기술이라면 배운다는 자세로 그저 읽었을 텐데 지금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생각과 다른 점, 내가 모르고 있던 점 등을 찾아가며 읽는 공부가 된 듯하다. 이 책은 그야말로 한 권의 산업 동향 분석서로서 나에게 현재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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