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의 르몽드가 한국어판을 출판한 지도 벌써 15돌이 맞았다. 많은 소식들이 있지만 르몽드 자체에 관한 얘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목수정 작가의 경험담이 서늘하게 가슴을 스친다. 눈앞에 많은 구름이 있음에도 맑아질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기다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눈앞의 현상보다 언론의 말을 더 신뢰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말을 하는 언론을 신뢰하는 것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언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상업주의에 찌든 언론이라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낼 언론이 필요하다. 르몽드는 그 자리를 굳건하기 지켜주길 바란다.
10월은 좌파를 집어삼킨 우파의 얘기와 그 속에서 좌파의 역할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듯했다. 더불어 독립 운동가를 폄하한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잘못된 점도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10월호는 르몽드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최근 공교육의 문제가 사회 전반적으로 드러났다. 사실 공교육의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선생님이 되려 하지 않는다. 선생님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 나라도 있다. 하지만 교육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핀란드는 달랐다. 부러운 일이다. 그럼 프랑스는 어떨까? 프랑스는 최근 대안 교육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대안 교육 대부분이 비싼 학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사립학교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교육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교육은 여전히 불평등하다. 실제로 대안 교육은 부유층 부모들이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는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대안 교육이 사교육 조장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저소득층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야 할 것이다.
'빨갱이'는 군사독재 시절에 권력의 하수인들이 즐겨 사용했던 단어다. 대표적인 매카시즘 용어다. 물론 요즘도 극우 성향의 사람들은 이 단어를 남발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지하는 색이 '빨간색'이라는 건 좀 모순적이기도 하다. 빨강은 인류가 사랑하는 색이다. 그리고 저항의 색이다. 프랑스혁명의 붉은 깃발도 바로 그것을 상징한다. 빨강은 혁명의 색이다. 우리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땅 위에 흘린 피의 색도 빨강이다. 21세기 우리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데 해묵은 이념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좌파는 정치적 노선이 꽤나 어렵다. 기득권이 차지할 이익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장애물도 많다. 약자들이 소리를 내지 않으면 모든 정치는 기득권을 위한 도구가 되고 만다. <진보와 빈곤>에서는 저자는 가난한 자는 진보의 시끄러움을 견딜 만큼 부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만다고 했다. 그래서 진보가 승리하려면 순식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조금 늦은 것 같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뚜렷하게 나뉘는 점이 있지만 그것이 더 이상 기득권과 약자가 아니다. 미국에는 보수와 보수만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이제 서로에게 권력을 내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더 강한 듯하다. 미국보다 더 미국 같다는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괜찮은 진보 세력이 없다. 극우들은 민주당이 좌파라고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극우와 보수만 있는 것 같다.
신자유주의는 여러모로 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온다. 양극화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망령들을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하다. 시대에 대한 혐오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 이어진다. 자칫 그 방향이 분노를 가지게 되면 옛날 좋았지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최근 사회는 '능력', '공정'이 키워드가 되는 것 하다. 능력이라는 것에 도덕적 잣대가 해이해지는 것 같다. 많이 벌고 많이 가진 사람이 능력 받고 존경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재능만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파시즘의 악령들을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이뤄진다. 잘 났으니까 그랬겠지라는 기함할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미국이 트럼프를 뽑은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나라에서 강한 지도자를 원한다. 무섭도록 말이다. 나치즘도 그렇게 생겨 났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평화로워 보이는 싱가포르의 내면도 아름답지 않다. 싱가포르의 이주자의 삶이 절망적이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여전한가 보다. 싱가포르는 70년 넘도록 총리가 3 명 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명은 부자 관계다. 투표권이 존재하지만 야당에 대한 규제도 있다. 반자유적 민주주의 표본이다. 파업은 불법이지만 조세피난처를 자처한다. 이민자를 받을 때에도 등급을 나눈다. 하지만 싱가포르 경제를 굴러가게 만드는 건 경제활동인구 40%를 차지하는 이민자들이다. 기본 급여도 없고 고용인이 부르면 언제든지 가야 한다. 싱가포르 경제는 핍박받는 이민자들 위에 세워져 있다.
세상 여러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혁명, 쿠데타 그리고 자유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쿠데타의 얘기부터 안락사의 얘기까지 모두 흥미로웠다. (조금 어렵기도 했고) 이렇게 또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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