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회의 579호에서는 여전히 건재한 슬램덩크와 건담의 이야기와 웹소설로 다시금 떠오르고 있는 장르문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나의 젊은 시대를 함께 한 슬램덩크와 건담의 이야기가 나와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무렵과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갑자기 이제 와서 슬램덩크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슬램덩크가 그동안 지속적인 콘텐츠를 내보인 것도 아니다. 갑자기 등장한 한 편의 영화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성의 없는 대답인 것 같다.
슬램덩크는 당시 연고전이라는 농구의 황금기라는 대세의 물결을 탔다.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는 손지창, 장동건, 심은하라는 하이틴 스타를 배출했다. 슬램덩크가 시대의 흐름을 탔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농구의 인기는 야구에도 밀리고 있는데 말이다. 'H2'가 더 인기 있어야 할 듯한데..
여기에는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꽤 나 현실적인 농구에 대한 섬세한 묘사,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한 청소년들의 치열함이 있다. 캐릭터 하나하나는 모두 매력 있으면서도 현실에 존재할 법하다. 채소연이 마음에 들어 농구를 시작한 강백호, 농구 영재로 자란 서태웅, 우직한 채치수 그리고 불꽃남자 정대만, 착한 남자 안경 선배, 농구는 키로 하는 게 아니라는 송태섭. 독자는 어느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고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한나라는 캐릭터는 지금의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당당한 여성상이기도 하다.
건담은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성공한 애니메이션이다. 누적 매출액이 30조가 넘은 이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장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수많은 메카닉 성애자들을 생산해 냈고 새로운 시리즈가 등장할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수많은 오타쿠를 양성했던 건담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성이 되어 버렸다. 건담은 여전히 많이 시청되고 건프라는 여전히 많이 팔린다. 그럼에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반다이는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번 시도를 했지만 장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고 되려 건담 마니아들에게 '이건 건담이 아니지'라는 평을 받아야만 했다. 건담은 거대한 연대기가 있다. 건담을 보기 위해서는 순서도 존재한다. 물론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시리즈도 존재한다. 결국 건담은 '아저씨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장벽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프로듀서 오카모토 타쿠야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고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수성의 마녀'를 만들었다.
수성의 마녀는 건담 최초의 여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건담 시리즈에 여성 파일럿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으로 배치한 것은 변화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건담은 방영과 동시에 무료로 공개된다. 유튜브와 같은 공개 플랫폼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이것은 건담 시리즈의 수익의 75%가 바로 건프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반다이는 실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회사 '선라이즈'를 합병했다. 건담의 다음 시리즈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로맨스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공식 같은 플롯과 클리셰로 동작한다. 여주인공을 내세우고 여성을 표적독자로 삼음에도 여성은 늘 멋진 남자의 사랑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지나칠 정도로 낡은 로맨스는 여전히 쓰이고 읽힌다. 그렇다고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수동적인 면을 나타내고야 만다. 이것은 어쩌면 로맨스가 가지는 메시지가 '행복'으로 귀결되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결말로 향함으로써 여성의 '선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로맨스의 파격은 '귀여니 작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때 언어 파괴자라며 뉴스에까지 나온 귀여니 작가지만 원초적인 남성상을 선보인 작가이기도 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로 접어들면서 커리어 우먼의 등장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악녀형 여주인공도 등장했다. 악녀형 여주인공은 페미니즘-리부트 세대와 겹치면서 가부장제에 대한 '반역'이 사회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최근의 로맨스는 로판 쪽으로 귀결된다.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세계의 질서를 이 세계에서 재조립하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무협 또한 시대의 변화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자유 플랫폼에서 작가가 직접 글을 쓰는 게 가능한 시대다. 이런 자유로운 공간은 웹소설의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 마지막 부근에 등장하는 북마녀의 칼럼을 읽으면 플랫폼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장르 소설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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