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시기에 죽임을 당했던 20만 명의 여성과 몇몇의 남성. 중세 유럽에서 많은 마녀사냥이 있어왔다고 알고 있었지만 되려 르네상스 시대에 그 수가 더 많았다고 한다. 종교와 종교가 부딪혔던 종교 개혁의 시대에는 상대를 이도교로 정의하고 매몰차게 공격했을 것이다. 더불어 지혜롭고 당찬 여성의 등장은 남성 중심의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도덕성과 성적 수치의 프레임을 씌운 채 그렇게 마녀를 만들어 냈다.
마녀의 역사와 함께 투쟁해 온 소수자 혹은 약자의 목소리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마녀의 역사를 르몽드의 지원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번 6호는 마녀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고 절반은 주된 이슈인 '마녀'를 다루고 절반은 사회 문화, 예술에 관한 것을 담았다. 중세의 마녀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마녀 그리고 마녀 사냥에 대해 얘기한다. 지금의 시대에도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하며 대중의 편협한 이성과 광기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기도 하다.
현대의 마녀는 판타지 장르의 콘텐츠들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강하고 능력이 있는 여성이 되어 있다. 때로는 강한 여성의 상징으로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이런 캐릭터들에 대한 호감과는 달리 마녀는 여전히 그렇게까지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마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던 것은 남성들이었고 그들을 부역한 여성들이었다. 그냥 당시 기득권이라고 얘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농경사회의 시작은 서서히 분업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남성이 생산을 여성이 재생산의 역할을 맡았다. 이 분업화는 산업혁명으로 가속화되었다. 여성은 점점 고립되었다. 그리고 고착화되었다. 일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를 나누를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잘할 수 없을 거라는 전제로 구분 짓거나 남성이 하지 않을 것 같은 것을 여성의 것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여자 남자는 그리 다르지 않았기에 잔다르크와 같은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의 등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강인한 여성의 등장은 남성에게는 두려움이었다. 자신의 영역을 뺏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강인한 여성에게는 여성성을 잃었다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우는 용도로 마녀를 만들어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할 수 있는 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프레임은 한 마을의 지혜로운 노파에게 더 많이 적용되었다. 공동체의 존경을 받는 나이 든 여성은 남성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은 폐경을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여성성이 존재하지 않다는 이유로 종종 마녀화 되었다. 많은 자료에서 마녀가 노파인 것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시대 강한 여성을 이상향으로 삼는 여성들은 스스로 마녀라고 얘기한다. 긴 역사를 보면 마녀라는 단어 자체가 '투쟁'과 이어져 있다. 그녀들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되려 역차별이라고 회자되기도 한다. 젠더 갈등이 심화되는 지금의 시대, 성소수자나 페미니스트 등을 향한 비난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마녀와 마녀 사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대보다는 야만의 역사가 인간에게는 더 익숙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본능이고 생존에 필요한 행위였을 거다. 동시에 연대라는 이름의 강요 또한 존재한다. 왕권 시대를 지나 바로 독재와 군부 정권으로 이어진 우리의 역사는 동일한 생각을 강요받아 왔다. 민주화를 향한 저항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지만 그 역사의 잔재는 여기저기 남아있고 또 누군가의 밈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국가의 존립이라는 미명아래 개인을 파괴하는 일.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되려 그 다수는 소수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둑을 무너트릴 수 있는 작은 구멍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박멸해야 한다까지 얘기하는 그들의 말속에는 증오마저 느껴진다. 근데 그 국가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국가인 걸까.
인간이 생각하는 다수의 생각은 자연 속에서는 오히려 소수 집단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 자체가 지구의 종의 나무의 이파리 수준 밖에 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이 가장 고등한 동물이고 지구를 마음대로 해도 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면서 작은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대체 누가 더 강한 걸까?
두려움은 생존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막연히 두려워하다 보면 그것에 대해 알려고 들지 않는다. 마치 처음 보는 음식 쳐다보기도 싫은 어린아이와 같다. 맛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맛을 봄으로써 더 많은 음식을 접할 수 있고 놓칠 수도 있었던 맛있는 음식도 찾을 수 있다. 상대를 알아가려는 작은 노력이 세상을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도 조금 덜어줄 것이다.
마녀가 더 이상 마녀라고 불리지 않아도 될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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