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끝자락에서 만나는 '미스터리' 가을호는 섬뜩한 재미보다는 진중함이 묻어 있는 느낌이다. 신인상을 받은 <치지미포>로 시작해서 <해녀의 아들>에서는 미스터리에서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끼니 문학인지 미스터리인지 구분이 되질 않지만 미스터리라고 재미만 추구하지 않아도 될 일이니까. 그런 면에서 가을호는 다채롭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미스터리 장르에 진심인 이 계간지는 나비클럽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번 호 특집은 유독 좋았다.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 어느 사건을 모티브로 삼음으로써 여러 말들이 오간 적이 있다. 그리고 반대로 잘 쓰인 미스터리 한편으로 박수를 아끼지 않기도 했다. 우리는 왜 범죄 실화를 보고 읽게 될까?
'익숙하고 비예외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예외적 사건'에 대한 스토리는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 장면, 행동이라는 고전적 이야기의 세 가지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범죄 실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이미 완전체이며 스토리텔링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이야기는 다른 이의 피와 눈물로 쌓아 올린 스토리임은 분명하다. 그것을 이용하는 창작자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범죄 스토리를 읽는 것은 범죄라는 스토리텔링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사회가 그들을 구해냄을 보면서 안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범죄 소설을 읽는 건 이런 역설적인 이유 또한 존재한다.
이번 신인상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빨치산을 잡으러 정찰을 나간 세 명의 군인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중 한 명을 악마에 투명하여 인간의 추악한 면을 드러낸다. 좀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화자가 누구인지 모호하게 설정해 놓은 점이 독특했다.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해녀의 아들>이었다. 제주 4.3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현대 사건을 기반으로 재조명해 본다. 너무 무거워지지 않기 위해 가벼운 로맨스도 깔아 두었다. 어두운 이야기에 너무 빠지지 않은 채 읽을 수 있게 해 줬다. 마지막 아버지의 낭독문이 슬펐다. 그래서 좋았다.
저번 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탐정 박문수>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사극풍이면서도 뭔가 적절히 잘 배합된 느낌이다. 재미로만 본다면 역시 가장 재밌었다.
이번 호는 가을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스릴러나 호러 보다는 인간 군상에 관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물론 모두 미스터리를 베이스로 깔아 두었지만 말이다. 작가님들께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느낌이랄까. 스릴 넘치고 섬뜩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가을에 맞게 잘 구성된 가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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