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1443년 만들어지고 1446년 반포되었다. 언어학자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다. 하지만 많은 양반들은 한글을 천한 것으로 여겼다. 진즉에 있어야 할 우리말 대사전은 일제 강점기가 되어서야 만들어졌다. 그 사이 새로운 것들은 모두 외국어를 한글로 대체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글이 우수하다며 국뽕이 차 있으면서도 우리말의 폭을 넓힐 생각은 도무지 없는 듯하다.
언어가 어떻게 권력이 되는지 언어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이 글들은 르몽드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지난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우리말을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설픈 영어로 굳이 연설을 했다. 통역도 있었는데 왜? 이것이야 말로 지금 한글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방송에는 보여주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반은 영어를 쓰고 있다. 심하게 얘기하자면 한글은 조사뿐이다. 젊은이들이 한글 파괴한다고 하지만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한글을 아예 없애버릴 생각인 것 같다.
언어는 인간이 만든 최대의 발명품이다. 언어가 만들어지면서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지식은 쌓였다. 강대국의 언어는 작은 나라의 언어를 소멸시켰다. 그 방법이 강압적일 수도 자연적일 수도 있다. 언어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쓰는 이들이 사라지면 함께 사리지게 되는 것이다. 제국은 늘 바벨탑을 짓는 모습을 상상한다. 제국 내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를 써야 한다. 그것이 민족이다.
아자 가트의 <민족>을 읽어보면 민족을 가르거나 융합하는데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나라는 언어권에 따라 분리주의를 요청할 수 있다. 각 나라가 자신의 언어를 지키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실용적인 면만을 내세우는 것은 결국 속국으로 흡수되는 길이다. 부산을 영어 상용화 도시로 만들겠다는 박형준 부산 시장의 공약에 헛웃음이 나온다. 여긴 미국이 아니다.
언어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AI가 될 수 있다. 물론 방대한 데이터가 쌓여 언어끼리 직접 번역, 통역해 준다면 말이다. 지금은 영어를 거쳐 작업되기에 완벽하지 못하다. 그런 때가 오면 소수 민족의 언어가 견디기 훨씬 수월할 것이며 실용적인 면으로 압박하는 일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단지, 상대가 나의 언어로 말을 걸어올 때와 상대가 내가 말한 말을 알아들을 때와 같은 짜릿함은 사라지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언어로 생활할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그리고 언어에는 문화가 녹아 있다. 그리고 상대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런 문화를 배운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전부 영어, 영어, 영어에 미쳐있다. 다른 언어학과들이 폐과를 할 정도로 영어에만 매진한다. 정말 실용적인 일일까? K-문화가 세계에 퍼져 나갈 때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모른다면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상호 작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경제의 숫자 놀음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언어와 문화 같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힘을 길러야 한다. 언어는 우리를 우리답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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