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작가는 중학교 때 <베니스의 개성상인>으로 처음 만나 좋은 기억을 가진 작가다. 꽤 치밀하고 즐겁게 읽었던 책인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조금 반가웠다. 30년을 훌쩍 뛰어넘어 작가와 만나게 되었고 최근에는 인기 없을 그리고 민감할 주제를 가지고 돌아와 있었다. 사실 나도 스스로 책을 골랐다면 아마 펴보지 않았을 책이지만 델피노 출판사의 지원으로 이렇게 펴보고 된다.
역사 소설은 픽션이 어느새 논픽션으로 써여지기도 해서 조심스러움이 있다. 삼국지를 집어삼킨 삼국지연의처럼 역사와 픽션은 가끔 다른 얘길 할 수 있다. 책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민감한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근대사 그리고 끝까지 심판받지 않고 떠난 전두환과 그를 심판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10.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당한 날 이후로 빠르게 재편되었던 힘의 논리. 누군가는 혁명을 얘기하고 누군가는 반역이라고 얘기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저 군인들의 쿠데타일 뿐이다. 쿠데타를 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한태형 대위와 새로운 권력에 충성하기로 한 장재원 대위 누 전우의 치열한 대립에 우나연이라는 히로인을 투입함으로써 대립을 더 높이려고 시도했다.
가장 피부에 닿아 있어야 할 이야기가 때론 가장 먼 이야기로 들린다. 어릴 때 라디오에서 진행된 '제5 공화국'이라는 성우들이 진행하던 프로가 있었다. 이럴 테면 오디오 드라마라고 할까. 그 정도의 멀고 구식의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글 또한 꽤 옛날 느낌이 난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세련되고 더 부드럽게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달달한 이야기도 섞어가면서..
군인의 이야기로 투박할까라고 생각들 기도 하지만 그때의 이야기는 그때의 느낌으로 쓰이는 것이 크게 나쁘지도 않았다. 한 사람의 분노를 무력이 아닌 법으로 해결하라던 전 상사의 명령은 이 책의 메시지이면서도 제목이다. 어떻게 보면 12.12 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무력은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주인공 한태형 대위의 심리적 변화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내용이며 작가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세밀한 정보가 묘사가 돋보이는 책이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시절. 그 뜨거웠던 세월 속에도 개인마다 뜨거움이 있었고 분명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격동의 세월은 그런 것들의 총집합 아닐까.
반역자는 스스로의 손으로 해결하겠다던 한태형 대위는 그럼에도 대통령이 적군의 손에 의해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신념이기도 하고 전략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일에 다른 나라가 개입하면 자칫 전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얀마 쿠데타에 미국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의 일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모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같은 편을 겨눈 총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며 모든 것은 법으로 판단해야 한다. (최근엔 그 법 집행자들의 신뢰도 낮지만) 그럼에도 잘잘못을 다투며 비판하고 토론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민주국가다. 그것이 책의 마지막 명령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전에 죽었다. 우리 법은 점점 더 진화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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