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나이에 꺼내 들었던 작품이 다른 작품의 근간이 될만한 작품이라는 것이 신선하다. 작가는 오랜 세월의 숙제를 해결하 듯 작품을 내어 놓은 듯하다. 얇은 책에 절반은 또 프랑스어로 된 원문이다. 다른 작품 같았으면 단편선으로 묶여 나왔을 글이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낼만 한 것이었을까? 한참 읽기 시작하며 속도를 붙여 나가는 순간에 만난 마침표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할 말은 다했다는 듯한 저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어 아쉽지는 않았다.
'Comprenez vous?'
서른 살이나 어른 남자와 사랑을 나눴던 경험에서 나온 이 작품은 '작가가 타인의 사생활을 들출 자격이 있냐?'라는 비판에 맞서는 대답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자신에게 의미 있었을 그 존재가, 오로지 그 존재를 통해, 자신에게 전해진 것을 글로 표현한다고 작가는 얘기했다. 일종의 답례랄까.
그런 면에서 문학을 시작하면서 부딪혔던 질문들. 문학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미화하며 또 그렇게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 계층을 뛰어넘는 개인의 성공이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착각. 어쩌면 이 젊은 남자와의 사랑에서 자신의 과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 이야기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성공한 그녀는 가난한 젊은 이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럴수록 예전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어떻게 폐경을 맞은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있냐는 듯한 조롱의 눈빛. 젊은 남자와 자랑하듯 연애할 수 있냐는 시선. 게다가 늙은 여성 취향의 젊은 남성에게 '왜 나는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중년 여성의 질투. 세상은 여전히 편견 속에 갇혀 있음을 실감하지 않았을까. 서른 살 어린 여자와 함께 다니는 중년의 남성은 아무런 지탄을 받지 않고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무례하고 질책하는 시선을 보냈다.
청춘과 사랑에는 나이가 없지만 젊은 남자와 함께 하면서 '나이'는 늘 인지하게 되었고 그건 '여성'이라는 굴레, '하층민'이라는 굴레를 쓴 사람들의 이야기 다르지 않았다. 성별에 따라 역할이 전해지고 남성과 여성의 성의 차이가 짓누르는 삶의 상황을 통해 그녀는 자신을 관통하는 언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모욕당하고 굴욕 당한 이들의 언어다. 어떻게 보면 저자의 글은 '읽히는' 글이 아니라 자신에게서부터 '출발하는' 글이다. 참아내고 감추었던 경험과 고독을 깨기 위해 글을 썼다.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젊은 날의 그녀가 불법 임신 중절을 했던 기억이 어쩌면 젊은 남자와 (강제로) 헤어져야 하는 상황과 묘하게 겹쳐 있다면 그건 시대가 여전하다는 걸 의미했다. 미래가 불투명한 젊음에 비해 자신은 부르주아 같고 그의 삶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여자가 되었지만 시간은 언제나 반복적이었다.
'나는 영원한 동시에 죽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라는 문장에서 그녀는 영원히 반복될 시간을 깨트리기 시작하려 했다. 세상이 쓰지 않는 소재와 언어로 아주 정치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젊은 남자는 그녀를 시간의 굴레에서 꺼내줬고 그녀는 젊은 남자를 아직은 기울어진 세상으로 보내줬다.
책을 단순히 스토리로 본다면 아직도 불편한 얘기가 될 만큼 여전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녀는 젊은 남자와의 연애 폭로가 아니라 자신의 문학의 길을 열어 줬던 그의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이 글을 적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런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그녀의 독보적인 문학 활동 덕분이고 노벨 문학상의 후광일 수도 있다.
성공한 자의 자기 계발서가 신뢰가 가듯 개인의 성취는 개인의 이유를 납득시키는데 중요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초심과 같은 이 글을 발표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이제는 이런 얘길 해도 괜찮은 위치에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점이 일차원적인 감정을 넘어 작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또 한 번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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