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미스터리의 계절이라고 할 만큼 공포와 호러의 작품들이 주목받는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신인상이 없다니 안타깝다. 소름 돋는 작품보다는 조금 기발한 소재의 작품이 많은 여름호였다고 평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길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이들을 추적하는 르포타주로 여름호는 시작했다.
휴가를 주제로 한 네 편의 단편을 품고 있는 이 책은 나비클럽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간의 잔인성은 어디까지일까. 사실 미스터리는 인간의 잔인함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속에서 나타나는 두려움. 생명을 다룬다는 것이 재미가 되어 버린 세상이 조금 섬뜩하다. 동물의 박제는 긴 세월에 걸쳐 있던 하나의 작업이었지만 길고양이를 수시로 죽이는 사람의 심리는 인정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 기쁨이 있다면 그 공포는 조금 더해 간다. 먹기 위해 죽이는 것과 흥미를 위해 죽이는 건 조금 결이 다르지 않을까. 늘 반박의 여지가 있는 물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이 필요할 것 같다. 모든 미스터리는 결국 해결되는 것을 목표로 하니까.
휴가를 주제로 하는 네 편의 단편들에게서는 소재의 신선함은 있었지만 몰입을 불러내기엔 단편으로서는 조금 무리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전개하다 보면 파도처럼 밀려 들 스산함이 너무 순식간에 몰려와 뭔가 쉽고 그 긴장감을 유지하려다 보면 정해진 지면 때문에 너무 빨리 긴장을 해소해 버리는 아쉬움이 꼭 남는다. 이건 미스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단편들이 그런 편이다. 얼마 전에 읽은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는 굉장히 짧았는데도 꽉 차 있었는데, 이건 관심의 문제일까 독자의 노력의 문제일까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이번 호에 시작하는 장편 <탐정 박문수>는 어사 박문수를 탐정으로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직은 예열하는 단계지만 그 표현이 재밌다. 서사를 쌓아가는 재미가 있고 그 시대의 문장과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노력이 잘 보이는 듯했다. 이번 호보다는 가을호가 더 기대되는 <탐정 박문수>다.
이번 호에서도 좋았던 칼럼 <미스터리란 무엇인가>에서는 미스터리 게임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나부터 아내, 처제들까지 모두 즐겨했던 <역전재판>의 얘기가 나와 반가웠다. "의뢰인! ~"라고 시작하는 대사가 아직도 또렷하고 가끔 우리끼리의 농담으로 여전히 쓰인다. 미스터리는 범죄의 해소라는 점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에게 던지는 메시지 또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좋았다. 흥미로움만으로 접근했던 미스터리에 이런 깊이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번 호에는 아쉽게도 신인상이 없었다. 그럼에도 심사평은 늘 좋은 방향을 제시한다. 미스터리는 어디에나 담길 수 있지만 그 개연성은 명확해야 한다.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는 설정, 사건의 경위 등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면 미스터리는 힘을 잃는다.
비문과 맞춤법이 맞지 않으면 심사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의 기본 소양이니까. 복선은 결과에 지나치게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되며 회수까지 충분한 거리를 둬야 독자가 궁금해 따라온다는 조언이 특히 좋다. 언제 던지고 언제 거둘 것인가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너무 범죄물 위주로 되어 있어 그렇게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를 잘 읽지 않는 나지만 지나고 나서도 섬뜩함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둔 악령이나 요괴를 다루는 미스터리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 점이 조금 아쉬운 여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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