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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노회찬 평전 (이광호) - 사회평론

야곰야곰+책벌레 2023. 6. 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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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털웃음이 어울릴 것 같은 위트 넘치는 남자. 한 손에서는 블랙베리, 다른 한 손에는 아이폰을 쥐었던 얼리어답터. 늘 청소 노동자와의 식사로 시작과 끝을 함께 했던 사람. 백지에 잉크 한 방울 떨어트린 게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온통 검은 색인 정치인들도 널리고 널렸는데.. 최고의 공격은 '농담'이라고 했던 우리 시대 서민의 언어로 정치를 했던 사람의 모습이 궁금해 책을 열었다. 그리고 책에서 우리 정치사에서 진보가 걸어온 길을 만날 수 있었다.

  평전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대기라고 해야 할 만큼 사실 위주의 서술을 하고 있는 이 책은 사회평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노회찬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당 대표 수락 연설로 유명한 '6411 연설'이다. 4시 반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의 풍경을 그리듯 얘기한 즉흥적인 연설이었다. 여전히 그는 우리 시대에 주목받지 못한 사람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이었고 그런 일을 하지 못한 당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노회찬은 삼성 X파일로 스타덤에 올랐다. 국내 1위 기업과의 대결은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알지만 터트릴 수 없는 사실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하지만 당시에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노회찬 뿐이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를 잘 사용했지만 황교안의 검찰은 노회찬을 통신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삼성과 관련자들은 모두 무혐의되었고 이건희는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연이어 노회찬은 우리 사회의 전관예우에 대해 터트렸다. '만인을 위한 법이 아니라 만 명을 위한 법이다'라는 그의 말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더욱 가옥하 다루는 경제 사범, 법조계 사범들을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여한 ~~', '진심으로 뉘우치고 ~~' 등을 이유로 감형을 시도했다. 하지만 묵묵히 일하며 '사회에 헌신한~~~' 이유로 감형되는 일은 없었다. 가진 권력이 클수록 책임도 커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전관예우는 지금도 여전히 팽배하다. 

  노회찬을 삶을 드려다 보면 한국 진보 역사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한 명의 십 대가 '교과서와 같은 삶'을 지향하며 시작한 인생이었고 자본주의라는 괴물의 목줄을 걸어보겠다고 목숨 걸고 싸웠던 일생이었다. 위트 넘치고 사람 좋아 보였던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 노동자의 안녕과 권리를 사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은 새삼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좌측에 서 있는 사람은 몇 명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과 아주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뿐이다.

  아무런 지지 기반도 없이 부딪쳐온 인생이었다. 거대 양당에 치이기 일쑤고 당내에서도 지지기반은 없었다. 개인의 호감으로 선거를 했다면 지지 않았어야 할 순간에도 집단의 결정에 의한 투표에는 번번이 졌다. 대중에게는 호감을 사는 일은 잘했지만 개인에게 호감을 사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시 한번 거대 양당의 소용돌이에 존재감이 사라진 진보정당이지만 그가 생전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사에서 국회까지 걸어서 5분 거리. 국회의원을 내기까지 50년이 걸렸다. 노동자는 삶이 힘들어 작은 이익에서도 서로 다툼이 생긴다. 하나의 민의로 이끌어낼 분노가 없다면 이내 사그라든다. 기득권은 살만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득이 될 것 같은 긴 시간도 똘똘 뭉친다. 민중이 기득권을 이길 수 없는 이유다.

  혹자는 얘기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보수파가 되는지에 대해. 진보와 혁신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변화는 늘 고통이 따른다. 가난할수록 이것을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서 혁명은 늘 순식간에 이뤄줘야 한다. 눈 떠보니 세상이 바뀐 것처럼.. 다 같이 살자는 메시지가 너무한 것이라면 적어도 사람답게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분단의 특수한 상황은 이념의 편향을 가져다주었고 상대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게 가능했다.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준 철학자가 누구인가는 질문에 '마르크스'는 압도적인 일 위를 차지했다. 그의 사상을 펼치던 많은 정치가들의 방법이 잘못되어 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왔지만 그로 인해 복지 국가는 하나씩 정착되어 가기도 한다. 노회찬이 영국 강연을 갔을 때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하던 한 사장은 다음 강연에는 천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노회찬 같은 빨갱이는 필요해'라고 대답했단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 모델은 북유럽이다. 노르웨이, 스웨덴이라는 넓은 땅과 풍족한 자원 그리고 적은 인구는 우리와 같을 순 없지만 그들은 사회 제도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고 있고 사회 제도를 위해 기꺼이 세금을 더 납부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 속에도 불만은 존재하겠지만 국가의 철학이 사회에 스며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노회찬은 그런 면에서 21세기의 진화된 사회민주주의를 우리나라에서 싹을 틔우려 했다. 꿈은 현실과 부딪쳐 나와야 하는 것이고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용접을 배우고 용접공의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 그 일을 잘해야 그들의 삶을 이해할 있다고 생각했다. 신뢰는 논리와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헌신과 애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그의 말을 우리 정치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부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했던 거짓말. 그건 자신이 지켜온 신뢰를 내다 버리는 일이었기에 그는 참 많이 부끄러웠나 보다. 오십억을 받아도 안 받았다고 떳떳한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에 행정 업무 실수로 처리하지 못한 두 번의 이천 만원. 그는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은 여전히 험난하고 조금 더 사람다운 사람은 사라져 가는 세상이다. 정치가 실종된 2023년의 현재에 노회찬이 더욱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서민의 말로 싸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꼰대 정치가들보다 더 기회주의자 젊은 정치인들이 판을 친다. 그래도 용혜인 같은 의원도 있어 희망은 있다.

  거대한 기류 속에 내가 해내겠다는 생각은 오만하다고 했다. 자신은 거대한 진보의 기류 속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던 노회찬 의원.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가시고 노무현 정신이 세상에서 자라듯 노회찬 정신도 그렇게 조금씩 움트길 기대해 본다.

  6411번 버스를 타고 투명인간처럼 세상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가 더 이상 투명하지 않은 세상이 되길 이 책과 함께 기원해 본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조금 먼 길이라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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