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계속 읽다 보면 작가는 자신을 작품 여기저기에 투영해 놓았다. 자신의 방대한 레코드에 대한 지식은 물론 아버지가 만주로 징집되어 갔던 일도 덴고의 아버지에게 투영했다. 그 시절의 모습도 아마 작품 여기저기에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확한 명칭을 쓰기로 유명하다. 총기명도 정확하게 얘기할 뿐만 아니라 옷 같은 경우에도 정확한 메이커를 사용한다. 물론 몇 해가 지나도 충분히 검색해서 알아볼 수 있을 거라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다른 작가들이 묘사로 적는 것들을 하루키는 그냥 제품 명을 적어 버린다. 그것보다 깔끔한 설명은 없다는 듯이.
덴고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의 글에 대한 태도와 작법에 대한 스킬도 종종 나타난다. 1권에서도 그런 부분이 등장했는데, 2권 또한 마찬가지다. '문장은 얼핏 보기엔 단순하고 무방비해 보여도, 세심하게 읽어보면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계산되고 다듬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문장은 하루키 자신이 추구하는 문장을 얘기하는 듯하다.
복선을 곳곳에 깔아 둔다. 독자가 충분히 알아챌 수 있게 깔아 두었고 등장인물들은 그 사실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마치 스토리와 관계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말한다. 하지만 허투루 쓰인 문장은 없다. 던진 떡밥은 반드시 회수해 간다. 하루키의 문장은 읽기 쉽지만 주도면밀하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상상이 간다.
2권에서는 사건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와 만나면서 드러나는 리틀 피플과 리시버와 퍼시버의 존재. 또한 덴고는 후카에리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듣는다. 덴고는 리시버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퍼시버는 그런 리시버의 자손을 잉태하려 한다. 리시버와 교미를 나누는 것은 실제 인간이 아닌 관념체. 도터. (사실 도터가 영어 daughter일 줄이야) 그들은 생리를 하지 않기에 잉태를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리시버가 무력해질 때 그런 일은 벌어진다.
모든 것은 리틀피플이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도구였다. 관념체는 리플 피플이 세상으로 오는 길을 만들어 주고 리시버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선구'의 리더는 후카에리의 아버지였고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모마메로부터 죽음을 청한다. 그를 죽여야 덴고를 살릴 수 있다며 아모마메의 결심을 부추긴다. 어릴 때의 강렬한 기억 하나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순 없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끈이 너무 강렬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진실이라는 건 꼭 실체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론 강한 아픔이 따른다. 그리고 인간 대부분은 아픔이 따르는 진실 따윈 원치 않는다. 그것이 종교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 선악이란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라는 리더의 말은 사뭇 깊이가 있다. 선은 균형 그 자체일 뿐이다.
2권 역시 밀도 있는 스토리 전개와 빡빡한 텐션이 유지되었다. 덴고에게 찾아온 후카에리가 마더가 아닌 도터일 거란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덴고는 이제 리시버가 되었고 그는 공기 번데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오마메는 놀이터에서 달을 보고 있는 덴고를 발견했지만 만날 순 없었다. 강하게 이어진 두 사람은 3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후카에리는 아오마메가 덴고를 찾아낼 거라 말했다.
아오마메가 다시금 입구를 찾아 수도 고속도로에 올랐지만, 그 부분은 조금 이상했다. 1984에서 1Q84는 한쪽으로만 흐른다고 했다. 그러면 자신이 나왔던 곳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지. 그곳이 막혔다면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전개를 생각해야 한다. 3권은 1Q84를 탈출하는 스토리로 전개되려면 아오마메의 착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루키의 마무리 스킬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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