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폈을 때, 뭔가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편집 때문일까 작가의 필력 때문일까. 원어로 보았을 때에도 이런 느낌일까. 문단의 구성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책에서 훌륭한 작가는 문단의 모양까지도 살핀다고 하는데, 헤밍웨이가 그런 편인가 싶었다. 그런 느낌은 1부에서만 느껴졌다는 것도 조금 신기했다. 그리고 나도 1부가 가장 좋았다.
헤밍웨이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책은 고유명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작품 중에는 대단한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유작부터 만나게 되었다. 꽤나 무직한 두께이면서 내용마저 묵직할 듯한 띠지를 바라보며 책장을 넘겼다. 1부에서 만나게 되는 토머스 허드슨의 모습은 외로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아이들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사실과 그것을 위해 기꺼이 루틴을 깰 준비도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는 너무나 좋았다. 바다낚시 속에 인생이 담겨 있었다. 그런 믿음이 가득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렵지만 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을 펴기 전에 만난 <하드보일드>라는 단어 때문에 상어 씬에서 아들이 죽는 게 아닌가 노심초사하며 읽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는 너무 완벽히 아름다웠다. 마지막에 등장한 아내와 아이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짧은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인간실격>을 언급한 출판사의 카피가 갸우뚱해지는 그 시점에서 심연으로 끌려들어 가는 문장들을 만난다. '쿠바'는 그야말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를 정도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끝나버린다. 상실감에 취해 방황하는 인간을 보는 듯하다. 100페이지가 넘는 2부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나 남은 작은 톰과 지냈던 허드슨은 전쟁으로 남은 아들마저 잃는다. 그 슬픔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들과 살아가며 슬픔을 느낀다. 아무리 흥을 내려고 해도 나질 않는 모습에 깊은 아픔이 있다. 티끌만큼의 슬픔도 나눠주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이 슬플 뿐이다.
허드슨은 갑자기 독일인을 찾아다니는 선장이 된다. 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 동료들과 함께 게릴라들을 찾고 생포하는 작업을 3부에서 한다. 아들 톰 또한 그런 독일인에게 죽음을 당했을 거니까.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증오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일까. 그들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 그저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죽은 자는 나쁘지 않다는 농담 섞인 행동인 것이었을까.
일차 세계 대전에서 많은 죽음을 보아온 인류는 인본주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상실감과 허무는 분명 그 시대를 살았을 작가에게는 영향이 없을 수 없다. 공군으로 출격한 아들의 사망. 그리고 상륙을 시도하는 독일인을 찾아다니는 아버지. 가족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전쟁 그 자체의 잔인성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상실한 마음을 벗어던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얘기하는 걸까. 자신의 슬픔에만 도취되어 있는 토머스 허드슨에게 던진 윌리의 말이 이 책의 메시지가 아닐까.
"자네는 자네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내가 아끼는 사람을 잃었다고 나를 아끼는 사람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작가는 어느 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 질문함과 동시에 우리는 모두 그런 틈에 끼여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인간 실격>이 유명하지만 굳이 헤밍웨이를 그 프레임에 끼워 넣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둘은 결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1부가 있었기에 2, 3 부다 유독 더 어두워 보이는 작품이었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전쟁 속으로 들어간 토머스 허드슨을 보면 '우리가 설사 지금은 어떤 좋은 입장에서 서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양면을 다 가진 인간이니까'라고 얘기하는 작가의 문장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양면성 그리고 누구나 잘못이 있으면서 또 없다는 걸 얘기한다. 그의 단어 '사랑하는 개자식'이 가지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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