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작년 마지막 호였다. 격주마다 발간되는 잡지다 보니 그 사이 발행된 것들은 모두 품절이 되어 있다. 기획회의는 독자를 위한 느낌보다는 출판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맞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그 내용은 소소한 재미가 있다. 574호의 이슈는 <수집할 결심>이다.
나도 어릴 때 우표 수집을 했었다. 아버지가 집배원을 했기에 모우기도 했지만 아버지 대신해서 배달을 하면서 신기한 우표가 있으면 떼어내서 모우기도 했다. 수집가는 그저 많이 모은다고 수집가가 되질 않는다. 가슴이 뛰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책 수집을 하고 있는 현재라고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에도 책 수집을 하는 분들의 얘기를 읽다 보면 이건 좀 차원이 다르다. 멀쩡한 아파트는 책에게 모두 내어주고 자신은 어느 작은 원룸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넘치는 만화책을 주체 못 하는 분들도 계시고 게임잡지들을 모아둔 이들도 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책에 미쳤다는 말을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문제는 책을 가지고 싶은 욕구, 훔쳐서라도 책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책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큰 집에 살 가능성은 별로 없다.
반대로 큰 집을 가진 사람이 책 수집가일 가능성도 별로 없다.
- 릭 게코스키
수집의 기본은 수집 대상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집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수집해야 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수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수집의 행위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던 글은 <멸균된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로 강양구 지식큐레이터님이 작성한 글이다. 요즘 학생들이 읽을 도서를 선정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라고 한다. 예를 들면 여성 비하나 혐오, 차별 등을 예를 들 수 있다. 완벽하게 멸균된 텍스트를 원한다. 장애인 비하나 소수자의 차별로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작가들은 이런 압박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적어지는 시대에 책 읽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 시대의 배경 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의미를 따지려 드는 사람은 더욱 적다. 실제로 SNS에서도 여성 차별등을 이유로 책을 폄하하는 글을 종종 만날 수 있다. 현대의 시야로 과거를 바라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독서는 오히려 조장된 사회적 올바름을 주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어떤 책들은 멸균된 아주 공정한 책이라며 광고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오히려 사회를 더욱 편협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멸균병동에서 살아갈 수 없다. 면역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 세균과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가며 아프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회에 부조리가 없을 수 없다. 멸균된 텍스트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려버리는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시대적 아픔을 들추어내고 공감하고 나누며 면역성을 길러야 한다.
인간의 것은 완벽한 것은 없다. 그저 지금 진리로 여겨질 뿐이다. 세상은 늘 움직인다. 하나의 주요 키워드가 가져다주는 정체성은 또 다른 편향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굉장히 복잡하다. 물고기를 잡아 줄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무작정 멸균된 텍스트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함께 읽으며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 외로는 <아니 에르노> 문학에 대한 칼럼이 있었는데, 벌써 4번째다. 4번째만 읽어도 좋은데, 1 ~ 3편이 궁금했지만 종이 잡지론 구할 순 없는 듯하다. 에르노는 성공 하여 쁘띠부르주아로 계급 상승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다루면서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을 시도한다. 교양 있는 부로주아들이 세상으로 들어서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것들을 되찾는 일이었다고 얘기했다. <남자의 자리>, <한 여자>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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