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일상

우리 가족 행사 주간

야곰야곰+책벌레 2023. 2. 20. 07:41
반응형

  1월 말부터 3월 초까지는 우리 집 행사 주간이다. 결혼기념일을 시작으로 내 생일, 아내 생일, 아들 생일로 이어지며 사이에 설이 끼이기도 한다. 우리 가족 생일이 끝나면 아버지 생신, 누나 생일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야말로 매주가 기념일이다. 워낙에 몰려 있어서 결혼기념일, 내 생일, 아내 생일을 하나로 퉁 치기도 하지만 때론 제대로 챙기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올해는 갑작스러운 업무로 인해 주말에도 계속 출근하는 바람에 결혼기념일은 그대로 케이크 하나도 조촐하게 보내며 뒤늦게 도착한 선물들로 조금 늦은 결혼기념일과 조금 빠른 생일 축하를 했다. 나는 기념일에 그렇게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라 내 생일이 그냥 지나가 버려도 아무렇지 않다. 수많은 날 중에 하루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상대의 생각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이 같이 산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홀로 살아온 시간 동안에 몸에 베인 행동은 고쳐지지 않는다. 그저 계속 상기시키며 기억할 뿐이다. 아내도 기념일을 요란스럽게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조촐하게나마 기념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는 것 같다. 수많은 날들 중에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날들 중에 특별한 하루이고 싶은 마음인 듯하다.

  올해는 딸이 궁금해하는 오니기리를 만든다며 오랜만에 요리 책을 꺼내 들었다. 요리도 일종의 체험 학습이니까 재밌어한다. 맛있는 걸 요리해서 먹는다는 것보다 요리 자체가 즐겁다. 새로운 경험이니까. 내 생일이지만 딸아이와 함께 주방에 섰다. 하루 전날 사둔 연어를 살짝 헹군 뒤 10분 정도 양념에 절인 후 박력분을 얇게 입히고 구워내면 끝나는 아주 쉬운 요리다. (칼질 안 해도 먹기 쉬운데, 괜히 칼질을 했다. 칼질하다 생각나서 한 컷 찍어 본다. )

  오래간만에 요리를 하니 재미가 있다. 딸아이 이유식을 만들며 완성된 나의 요리 실력은 그냥 망설임 없는 게 장점이랄까? 무슨 일을 하는데 그냥 시작하면 되지라는 생각은 요리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아침에 일어나 받은 아이들의 서프라이즈와 함께 행복한 아침을 맞아 본다.

  여새를 몰아 아내의 생일을 준비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업무. 덕분에 여유가 있다면 있으니까. 미역국과 잡채를 만들 재료를 사서 미역국은 전날에 잡채는 당일 아침에 달그락 달그락 요란스럽게 만든다. 미역국이야 워낙 자주 끓이니 힘들지 않게 만든다. 잡채도 몇 번 만들어 봤다고 그렇게 어렵지 않다. 미역국을 저녁에 끓이는 건 끓이자마자 먹는 것보다 다음날 한번 더 끓이면 맛이 좋이 지기 때문이다. 잡채는 당일 해야 면이 붇지 않기 때문이고.. 

  단출한 아침을 시작한다. 잡채를 만드려는데 처제가 시댁에 갔다 오후에 온다고 해서 만들려고 찜해둔 요리는 저녁에 만들 생각이다. 그릇을 치우고 아내가 주문한 스타벅스 '돌체 라테'를 대령한 뒤 세차를 하러 갔다. 처제가 도착하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기도 했고 차가 비에 맞아 씻겨 달라 아우성(?)이어서.. (내 마음이 아우성이었는 듯.. )

  그렇게 도착한 세차장은 차들로 넘쳐 대기줄까지 있을 지경이어서 세차를 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오늘은 외부 세차만 빠르게 할 요량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었다. 차를 몰아 집에 주차를 하나 처제네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빠르게 본 뒤 집으로 돌아갔다.

 

  "언니 생선(생일선물) 정했어?"
  "아직.."

  이런 대화 속에 아재 개그를 투척한다. 

  "생선은 역시 도미지."

  나는 도미를 사러 간다.

  마트에 도미가 없다. 당황스럽다. 횟감 정도의 두툼한 도미였으면 했는데 갈치를 빼곤 전멸이다. 아쉬우나 따나 팩에 들어 있는 옥돔을 산다. 살이 별로 없고 가시만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인생은 직진이라 하기로 한 건 해야겠다. 요리를 도와주고 싶은 딸은 옆에서 어슬렁 거렸지만 처제네도 오고 언니를 너무 좋아하는 7살 꼬맹이도 도착하는 바람에 딸은 얼마 도와주지 못하고 철수했다. 도미를 자르는데 옆에서 지켜보며,

  "요리하는데 힘도 좋아야겠네. 나도 근육을 키워야지"

라는 말을 남긴 채.

  저녁은 '오렌지 맛 도미 오븐 찜구이'와 '아게다시도후' 그리고 '베이컨말이 오니기리', 역시 전부 처음해 보는 요리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도미는 살이 너무 적고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조금 비릿할 거 같다. (아내는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두부 요리는 간이 약하다. 튀긴 두부를 간장에 조금 조리는 과정을 중간에 넣어야 할 것 같다. 베이컨 말이는 말해서 무엇.. 맛있을 수밖에 없다.. (딸이 예쁘게 말아주었다.)

  그래도 열심히 만든 거라고 잘 먹어 준다. 뫼니에르나 밀푀유 나베 같이 실패가 어려운 아이들도 있지만 역시 요리에는 깊이가 필요하다. 책에 보이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요리 책이나 인문 도서나 다르지 않은 점이라면 역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뜬금없는 독서론... )

 이모 생일이라고 달력에 하트 그려준 조카가 사다 준 케이크와 함께 행복한 마지막을 장식한다.

  올해도 가장 중요한 탄신일을 잘 마무리하며 한 해의 평안함을 기원한다. 기념일이 뭐 대수일까 싶다 가다 챙김 받다는 그 마음이 좋아 기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기념일에 무덤덤한 나에게도 뭔가 상대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줬다는 사실은 기념일이라는 키워드를 넘어 전달되는 행복한 마음이다. 내가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상대에게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어쩌면 자기중심적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효리가 방송에서 이상순이 너무 자상한 이유가 돈 안 벌고 자기 하고 싶은 거 다하고 그런 거라며 자신들 남편이나 아내를 채근하지 말라고 했다. 힘들고 지쳐 들어온 사람에겐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라며, 십분 공감하는 말이다. 에너지를 다 쓰고 왔는데 집에서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더 낭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도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고, 지금도 힘들면 불쑥 센 말이 나가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 아이들을 향해 있지만.. ㅎㅎ)

  살아보니 신혼 초보다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상대는 바꿀 수 없는 존재며 그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는데 많은 시간이 든다.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고 의식하지 않으면 놓치는 행동들도 많지만 노력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풀어져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은 사실이며, 하루의 노력이 일 년을 좌우할 수 있음은 자기 계발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 날도 누구에게나 도래할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