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상대적으로 명확한 감정인 희로애락과도 차이가 있다. 이 오묘한 감정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한데 버무려 놓은 듯이 격정적이기도 은은하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 철학적으로도 오랜 시간 이어져 왔지만 그 아름다움 혹은 처절함에 대해 얘기할 뿐 명확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랑은 정말 복잡 미묘한 감정이며 이 감정은 그 자체로 환희를 줄 수도 때론 증오를 줄 수도 있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정이 미운 정이라는 설도 있으니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은 뇌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서 알 수 없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사랑은 중요한 덕목이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사랑은 중요한 요소다. 사랑이 결핍되면 정신적으로 아플 수 있다.
사랑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이어지는 가족과의 사랑에서부터 이성에 대한 사랑, 우상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오타쿠라면 이해할 수 있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 (그러고 보면 종교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인가. ) 등이 있다. 이런 종류로 살펴보면 대면, 비대면으로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다른 감정들보다 호르몬 활동이 강한 편이다. 페로몬,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등이 그렇다. 한 때 뇌에서 분비되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 최소 3개월 일반적으로 2년이라며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얘기가 유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에 대한 현상일 뿐이지 이 호르몬이 사랑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생연분의 부부에게는 평생 분비되기도 하며, 페닐에틸아민 분비가 줄어들면, 옥시토신이 증가하여 서로에게 편안함을 가지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격정적인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니까.
수많은 철학자가 사랑을 정의하려 많은 분류를 제안하였지만, 이 질문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질문의 요지는 애정에 관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떤가? 얼굴을 보지 않은 상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의 어원은 정확하진 않지만 여러 설이 있다. 살다 또는 사르다에서 '살'과 '-앙', '-엉'이 결합되었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과 상대를 헤아린다는 '사량(思量)'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지금의 시대에는 '열렬이 좋아하는 마음' 혹은 '아끼고 소중히 위하는 마음' 등으로 나타내곤 한다. 사랑은 그런 관계가 형성되면 얼마든지 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최근에는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AI와의 대화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한다. AI는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나를 학습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기 때문에 쉽게 마음이 끌린다. 실제로 AI와 사랑에 빠져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분명 외로움 속에 사랑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고 결핍된 사랑을 채우는 과정에 쏟을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채팅으로 시작한 장거리 연애를 하며 결혼을 하였고 주위에도 게임 속에서 만나 결혼한 사람들도 제법 있다. 상대에 대한 호감과 좋은 감정은 마주하고 느끼지 않아도 분명 시작될 수 있다. 그 속에 스킨십이 빠지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고 어떤 이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스킨십은 분명 사랑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속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 이혼사유가 된다는 게 전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요함에 대해 느끼기엔 충분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스킨십은 분명 채네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행동을 만들지만 행동을 통해서 사랑은 또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해야 하는 것과 섹스리스가 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또한 사랑의 단면이라 생각한다.
비대면 사랑은 대면 사랑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고 비대면이 대면이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생경함이 두 사람의 인연 속에 하나의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면이 필요한 시간이 분명 도래할 것이다. 인간이 종족 번식 코드가 삽입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이전에 곁에 있다는 사실은 호감을 확신으로 바꿔 줄 것이다.
그럼에도 비대면 사랑 또한 유효하며 평생 한 번 만날 수 없는 우상들에 대한 사랑 혹은 가상 세계의 인물에 대한 사랑 또한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다른 사랑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존재만으로 행복과 편안함을 준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닐까. 그냥 조금 다른 모습의 사랑일 뿐이다.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있다면 사랑을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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