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라 함은 원래 체제를 유지하는 안정을 우선 시 하고 현 체제의 법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중도에서 약간 치우친 보수'라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얘기하곤 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아무리 진보주의자라고 해도 지도자가 된다면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유럽의 정당 사이에 우리나라 정당들을 가져다 놓으면 민주당은 보수파, 국민의 힘은 극단적 보수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이랑 비교하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두 권의 책 중 한 권인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들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잘하기 위해 '자유론'을 선행해서 읽기도 했다.
1960년대 냉전의 시대 속에 편찬된 이 책은 냉전 시대의 보수주의자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주었다. 보수라는 것은 체제 안정이기에 '이념'으로 분류될 수 없기 때문에 '보수주의'라는 것이 어색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신념이라는 부분을 두고 얘기한다면 저자는 분명 '보수주의자'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내가 보수주의자가 아닌 것도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1960년대의 저자보다도 더 낡고 편협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진보는 '평등', 보수는 '자유'라는 얘기는 자주 듣는 말이다. 두 가치는 타협이라는 것으로 균형을 맞춰야 하는 모순적인 단어인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그런 것 같았다. '자유의 평등'이란 단어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개인의 자유는 구속되거나 억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자유론>에서도 누누이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단지 이 보수주의자의 주장은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의 일부분만 취하고 있다. 60년대 냉전시대를 살아가던 인물의 주장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을 수 있긴 하지만 지금에 적용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주장인데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은 저자의 주장에서도 더 좁은 부분만 취하고 있다.
저자는 보수의 가치. '자유'를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낙선하거나 표가 떨어져 나간다고 해서 버려져서는 안 되는 가치라는 것이다. 저자는 적어도 신념이라는 것이 있다.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고 권력을 줄이는 것이다. 자유의 가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여기서 보수의 가치의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 자유를 위해 권력에 대항하려면 또 다른 권력이 필요하다. 저자가 말하는 노조의 권력화 정치화를 부정하는 행위는 노동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다. 그것 자체는 인정하지만 권력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아나키즘과 무엇이 다를지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완전한 자유를 얘기해야 한다는 말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대중에 피해가 있는 자유는 간섭받을 수 있다고 했다. 완벽한 자유라는 것은 그대로 두더라도 완벽하게 작동할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을뿐더러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저자 또한 인간의 선함을 믿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시장은 공급과 소비에 의해서 자연스레 가격이 형성되고 모두가 시장 경제에 의한 부를 획득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에서는 공감 가는 부분도 존재한다. 권력이 집중되는 위험성뿐만 아니라 획일적인 교육으로 다양성을 잃을 위험을 얘기한다. 무분별한 지원으로 의존적인 삶에 길들여져 버리는 시민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자정작용을 기대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 너무 올라간 간수치는 운동만으로 내리길 쉽지 않다. 약을 써야 한다.
지금의 자유만으로 날뛰는 자본주의를 막아내기 힘들다. 모든 권력은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권력의 간섭은 불가피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이기도 하다. 문명화를 이루지 못한 사회를 발전시켜 그 구성원이 이루고자 하는 자유를 얻게 해 주기 위해서는 독재마저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한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을 빌리자면 지금의 시대 또한 자본 독재에 빠져 있는 시민들의 자유를 구해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복합적인 문제로 가득 찬 현재. 어떤 이념만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자유를 외치며 그 옛날의 보수주의자보다 구식의 정치를 펴 나가고 있는 한국의 보수라는 사람들에 한숨이 나온다. 누구보다 보수적이었던 저자는 '자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소수의 문제는 소수의 자유의 문제라고 얘기하며, '낙태'는 여성의 문제라며 지지했고, '남성 동성애자'의 군 복무 또한 지지했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대로 보수라는 단어를 이념으로 사용하려면 저자만큼의 확신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낙후된 우리나라 보수의 민낯을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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