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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헌법의 자리 (박한철) - 김영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10. 1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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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은 우리나라의 최상위 법이면서 모든 법의 근간이 된다. 법은 헌법, 법률, 명령, 조례, 규칙의 단계를 가지고 있고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상위법이 하위법보다 우선 적용한다. 헌법은 헌법재판소가, 법률은 국회가, 명령은 대통령이, 조례, 규칙은 장관이 관리하는 식이다. 최근에 국회에서 입법한 내용을 시행령으로 무마하려는 행위는 어찌 보면 이 근간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이처럼 헌법은 어떻게 보면 국가를 의미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일 것이다. 지난 20여 년의 헌법 재판을 통해 우리나라 헌법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13개의 주요 헌법재판을 되돌아보며 우리 헌법(혹은 헌법재판소)이 걸어온 길을 얘기하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법이라는 것은 국가를 이루기 위해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국가를 고대 로마에서는 '공공의 상태'라고 했고, 막스 베버는 '합리적 지배'라고 했다. 게오르크 옐리네크는 국가는 국가권력, 국가인민, 국가영토로 구성된다고 했지만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는 영토가 없더라도 국가로 인정되기도 했다.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라고 했다. 이제는 경제적인 것으로까지 되기도 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헌법 또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일 것이다. 타협의 가장 이상적인 부분이 헌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권력을 알기 위해서는 헌법을 알아야 한다. 일반 국민 누구나 헌법을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오덕 선생의 주장이 이해가 기도 한다. 지금의 법률 체계는 미국과 독일을 따르고 있고 법률 용어는 지극히 일본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과 철학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지만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철학은 추상적이지만 법은 현실적이다. 하지만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철학을 논외로 할 순 없다. 특히 헌법과 같은 최상위 법률은 더욱 그러하다. 평등은 무엇인가, 정의는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고 시대에 맞춰 해석해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기울어짐도 없이 오직 가치와 기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헌법재판관도 사람이며, 임기가 있고 세상에 초연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자신의 자리를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책에서 다루는 13가지 헌법 재판은 안타깝게도(?) 내가 모두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사실 이런 내용이 논쟁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하위 법률에서 혹은 행정에서 이를 보완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 가산점 제도, 시각장애인 안마사 독점,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이 그러하다. 양성 평등에 있어 호주제 폐기, 낙태 허용, 간통죄 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부분이 논란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관습헌법은 굳이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행정 분산을 통해서 서울 밀집을 늦추고 지방도 살리면 좋은 것 아닌가. 요즘은 사무처리가 인터넷으로 모두 이뤄져 굳이 한 곳에 모여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친일 재산 환수 결정에 헌법을 들먹이며 재판을 신청한 패기에는 사실 어이가 없었다.

  챕터의 시작은 늘 철학적 질문과 서술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철학적인 책이다. 그리고 실제 헌법재판의 결과와 해석을 달아준다. 법률 그 자체가 말이 어려워서인지 알 것 같다가도 이내 미궁에 빠져버린다. 무슨 말이었지?라는 되새김을 하다가도 예전의 기억에 의지해 페이지를 넘기곤 했다. 그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용납될 것 같지 않았던 양심적 병역 거부 또한 일부 인용되었고, 낙태죄 또한 2021년 1월 1일 폐지되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개정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어 법에 위반되는 낙태 또한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 일 좀 해라)

  세상은 빠른 속도로 양극화되며 분열하고 있다. 논쟁의 여지가 많아지고 토론이 사라지고 원색적인 비난만 난무한다. 소위 '법대로 하자'라는 말이 익숙해졌고 정당의 일을 법정에까지 들고 가는 일이 생기고 있다. 정치적인 부분까지 헌법재판소의 임무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헌법 재판은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들이 국회에서 제대로 일한다면 굳이 헌법재판소까지 들고 갈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제 우리나라는 UN 인권이사국에서 처음으로 연임을 실패했다. 정치적 혐오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 헌법 또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까. 다음 20년을 되돌아보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헌법을 유린하는 사태는 얼마나 또 생겨나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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