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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술의 힘 (마르쿠스 가브리엘) - 이비

야곰야곰+책벌레 2022. 10. 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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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를 이끌고 가는 것은 과학적 '환원주의'다. 그 근간에는 자연주의와 구성주의가 있다. 인간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존재는 실재하며 실재는 하나의 것으로 환원될 수 있으며 그것은 과학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보다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지금의 생각들이 사회, 정치와 맞물려 인종주의, 포퓰리즘 등을 양산하고 지금의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저자는 '신실재론'을 주장하고 있다. 신실재론은 어떻게 보면 현대의 문제에 대한 도전이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어느 시대보다 막강한 자연주의를 넘어야 하지만 이런 도전은 긍정적이지 않을까?

  자연주의와 구성주의라는 두 주류에 대항하는 신실재론이 강종하는 예술의 급진적 자율성을 다루는 이 책은 이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가벼운 마음을 책을 집어 들었다. 두꺼운 책을 연달아 읽은 뒤에는 심리적 환기가 필요했고 '예술'이라는 단어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100페이지 남짓의 이 책은 20페이지 남짓의 역자 해석을 읽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힘든 책이었다. 마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는 기분이었다. 현재 주류 사상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상과 같은 이 책은 기존에 흘러온 강력한 사상들과 대척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철학자가 이렇게 치열하게 맞서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라 어려우면서도 신선했다. 하지만 '미학'을 입문조차 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헤겔의 미학 강의를 먼저 읽을 걸 하는 후회도 살짝 들었다.

  자연주의, 구성주의와 맞서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이 아마 예술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성주의의 입장에서 예술은 작품을 보는 자의 눈에 있고 제도록적으로 승인된다 주장이다. 예술 작품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감상자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저자는 예술은 그 자체로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작품에 빨려 들어갈지 아닐지는 우리가 아닌 작품의 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상자는 물론 창작자도 종속된다. 예술 작품 스스로가 존재하기 위해 우리를 참가자로서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미적 경험은 사전 훈련 없이도 가능하다.

  신실재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의미장'이다. 여기서 '의미장'은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와는 다르다. 여기서 '의미'는 고틀로프 프레게의 '동일성 수수께끼'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 금성은 '샛별', '저녁별'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같으면서도 다르게 이해된다. 숫자 8은 4 + 4, 5 + 3, 1 + 7 등과 같이 표현될 수 있지만 이것은 '주어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서의 8의 '의미'인 것이다. '의미'는 대상을 서로 다르게 '파악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지는 방식'이다.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정도로 참되고 객관적으로 참된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현대는 기술과 과학의 시대이면서도 너무나도 미학적인 시대다. 예술은 도처에 숨어들어 있다. 포스트모던적 의미에서 신은 죽었지만 지금의 종교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것을 저자는 인간의 '상상'의 결실이라고 얘기한다. 인류가 만든 인공물들은 모두 인간의 상상에 의해 모습을 갖춰 왔다. 상상력은 우리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상상력의 심장에 위치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지각의 문제, 해석의 문제, 수행  등은 사실 알면서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그것과 관계가 생긴다는 것 의미론 해석은 구분이 잘되지 않았고, 청동의 조각상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속에 들어간 우리는 해석하려 하는데 그것을 '수행'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무언가의 외부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장 속에 들어가 있다는 설명 같았다.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

  이는 얼마 전에 읽은 시간의 물리학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지금의 환원주의는 작은 계(field)를 만들어서 외부에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해석하지만 그것은 모든 영향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이며, 우리는 결국 우주라는 계(field) 안에 있는 관찰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는 것도 예술의 계(field) 속에서 서로 관계하는 영향을 얘기한다는 얘기로 일단 이해를 했다. 결국 예술도 본질적으로 본편적 법칙 아래에 둘 수 없다는 얘기였다.

  어려운 얘기로 무장한 이 책 그리고 '신실재론'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술을 접하는 우리에게 특별한 차이가 없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은 인간의 해석 능력이 아니라 예술 자체의 문제로 돌리며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 자율성을 가진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자연이나 세상 속에 속한 하나의 구성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존재'로 실재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규범은 없다. 마네의 그림도 피카소의 그림도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 예술은 인간이 그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묻지 않는다. 우리가 끌리거나 그렇지 않을 뿐이다. 이것은 예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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