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숨 (테드 창) - 엘리

야곰야곰+책벌레 2022. 2. 5. 00:09
반응형

  SF 팬이라면 아이작 아시모프는 교과서처럼 테드 창의 소설은 참고서처럼 읽는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여러 장르를 섭렵하느라 테드 창의 책은 처음 열어보게 되었다.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구성이지만 굉장히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정성 들여 읽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책은 9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초단편부터 중단편까지 길이는 가지각색이다. 그나마 최근에 발간된 책임에도 그렇게 먼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얘기를 꺼내어 놓음으로써 나에게 SF라는 정의를 다시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Science Fiction은 가까운 미래나 아주 먼 미래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 책은 SF는 과학을 이용한 픽션이라는 그 자체라는 것을 첫 작품부터 여지없이 보여준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과거 연금술이라는 과학을 이용한 스토리를 전개해 간다. 연금술사의 문이 만들어진 그날부터 그 문을 이용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 혹은 과거의 자신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 문을 통과한 세 명의 이야기가 꽤 철학적이어서 꼭 탈무드를 읽는 느낌이었다.

  테드 창의 진가를 본 작품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였다. AI를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볼 것인지 하나의 생명체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AI는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지,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반려동물처럼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AI 훈련사의 이야기다. AI로 만들어진 '디지언트'라는 것이 성장하고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 그리고 상업적으로 가치를 부여할지 동반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지의 갈림길에 놓인다. 모든 산업은 자본을 보고 움직이지만 인간이 부여한 지능이 어떤 방향으로 자라나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잘 묻어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적, 감정적 진실>은 굉장히 철학적인 이야기였다. 문자가 발명 전의 문명에서의 글자의 출현은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기록하지 못한 채 사실적인 기록에 치중된다. 기억이라는 것은 사실적인 내용에 감정이 묻어 미화되거나 폄하되기도 한다. 반대로 조금만 더 미래로 가보면 우리는 글자 대신 영상으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을지 모른다. 글자에 묻은 감정마저도 완전히 지워진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진실만 남게 된다. 주관적 진실이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는 인간일 수 있을까? 그저 인지를 할 줄 아는 사이보그가 되는 것은 아닐까? 기억이라는 것은 모든 사실이 공평하게 기록된 것이 아닌 살아오면서 애써 선별해 놓은 기록이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기존에 읽어오던 SF 소설들은 결핍의 요소를 과학의 기술로 채워놓음으로써 그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테드 창의 작품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얘기한다. 내용은 굉장히 전문적이고 치밀해서 읽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나 역시 몇몇 작품은 무슨 얘기지 하면서 그저 페이지만 넘기다가 어느 순간에 '아~'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 이야기를 놓치게 되어버리는 어려움이 있었던 책이지만 문장이 굉장히 깔끔했다. 편하게 읽지 못하는 점에서 난이도가 조금 있는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SF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혀줄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생각을 유도하는 좋은 책이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느리고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