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독서 활동

(독자수기공모) (일과) 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야곰야곰+책벌레 2021. 7. 1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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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월 31일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동네지만 그날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첫 출근은 2월 1일이었다. 하지만 31일 올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 그 날 회식자리에서 회사 분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다들 좋은 인상에 조금은 다르지만 다들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17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입사하고 몇 년간은 일은 나에게 즐거움이었다. 기껏해야 20 ~ 30만 원짜리를 만지다가 1 ~ 2억 하는 제품을 만져볼 수 있다는 것은 공돌이로서는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회사에는 새로운 것이 너무 많았고 그것들을 배우는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매일매일 늘어가는 실력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고 칭찬과 인정을 받는 그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연차가 쌓여갔고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 늘어갔다. 이제 일은 항상 즐겁지만은 않게 되었다. 업무가 난관에 부딪혀 밤샘을 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힘든 일만큼이나 보람은 있었다. 어려운 일을 마무리했다는 주위의 인정과 잘 이겨내며 성장한 자신을 칭찬했다.

  일이 '고통스럽기 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가슴뛰는 일이 사라지고 나서부터는 회사 생활에 지겨움이 생겨났다. 도전할만한 일이 사라졌고 재미가 없어졌다. 그러면서도 팀장이 되었고 그때부터는 고통 뒤에는 새로운 고통만 이어졌다. 보람을 느끼던 자리에는 안도를 느끼는 마음이 생겨났다. 원가절감이라는 명목하에 점점 더 질 떨어지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당연해졌으며, 잘하고 싶었던 마음은 고객의 날 선 불평과 고함 소리에 잊혀져 갔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을 쏟으면 핀잔을 들었고, 내가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부끄럼과 고통으로 바뀌었다. 실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시스템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 판단을 내리는 순간순간이 힘들었다. 돈에 미친 기업은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17년 남짓 지내오면서 회사에는 많은 감정이 묻어 있다. 아주 작던 시절의 아기자기함이 그리워질 때면 지금의 어수선함이 더욱 힘겹다. 회사가 이익에 관심을 가질수록 사람들은 힘겨웠던 것 같다. 더 멀리 뛰기 위해서 몸을 움츠리는 개구리처럼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한데, 전진만 외치는 전술 없음에 한탄이 나온다. 일을 '자아 실현'이라고 외치려면 적어도 회사에서 나의 발전이 담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서 돈만 보고 일해야 한다는 것은 한달에 한 번만 즐거운 일이 되고 만다.

  43세. 그때가 되면 나는 은퇴를 하기로 했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해야 하는 그 나이가 가까워져 간다. 지금 나는 지금의 일과 조금씩 헤어지는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롭게 도전하는 일은 두근거리고 즐거운 일이었으면 좋겠다. 힘들더라도 행복한 일이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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