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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삶은 공학 (빌 해맥) - 윌북

야곰야곰+책벌레 2024. 6. 2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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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학이 삶이라는 이 책은 분류가 무려 '인문'이다. 인문은 '삶'에 가깝지만 공학과는 또 한 없이 멀어 보인다. 저자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공학의 사고방식을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공학 역사를 짚어본다. 그러다 마지막에 울분을 토하듯 말한다.

 공학이야 말로 인간적인 것이야!,라고.

  공학적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지에 얘기하는 이 책은 윌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한 명의 공학자로서 이런 책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공학이야 말로 실천적이며 실용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학이야 말로 허공을 휘두르고 있는 손에 뭐라도 쥐어줄 수 있는 학문이다. 공학은 인간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책의 시작과 함께 저자는 공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성공하면 과학의 기적이고 실패하면 공학의 실패다'

  많은 기술들은 결국 과학적이지 않고 공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학은 과학을 현실화해 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공은 늘 과학의 뒤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리더가 된다라고 외쳐도 실무자가 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과학은 진리로 인정받고 말고의 여부만 있을 뿐 성공과 실패 위에 올려져 있는 것 같진 않다.

  과학과 공학은 애초부터 지향점이 다르다. 과학은 진리를 찾지만 공학은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과학은 공학이 쓸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줄 뿐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절실함이 공학에는 존재한다. 그래서 공학은 완전무결한 이론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발전한다. AI의 동작 원리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AI는 발전하고 있다. 양자 역학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백색 LED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공학은 그 자체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기술이라는 건 그것을 개발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결국 편향적 기술이 된다. 에어백 기술이 백인 남자 기준을 테스트하던 거라든지(지금은 가족 세트로 테스트) 코닥이 처음 개발한 필름에는 흑인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라는 지가 대체로 그렇다. 몇 해 전에는 구글에서 만든 안면 인식 기능이 여성이나 유색 인종에 제대로 반응 않는 문제도 있었다. 많은 테스트들은 개발자 주위 환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결과의 편향도 존재한다.

  공학은 누구 한 명의 천재가 턱 하니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야만 이룰 수 있다. 공학자를 영웅시하면 그 긴 역사를 만든 많은 공학자들의 이름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위대한 공학자가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성공한 공학자만 이름을 남긴다. 대표적인 예가 에디슨이라고 할 수 있다.

  단독 발명자에 대한 추앙은 공학적 방법을 지워버린다. 모든 공학적 경이를 과학적 혁신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의 업적까지도 가려버린다. 개발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은 무대 밖으로 밀려난다. 공학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동료를 잃는다. 

  공학은 많은 기술을 인간을 위해 사용하려 노력해 왔다. 레이더 앞에 있다가 호주머리의 과자가 녹아버리는 원리로 전자레인지는 만들어졌다. 세계 대전 이후 너무 많이 남아버린 탱크 때문에 굴삭기는 발명되었다. 우연한 계기와 어느 곳으로 연결시키려는 끈질김이 공학적 사고방식이다. 인간이 도구를 처음 쓸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과 같은 학문이다.

  공학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학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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