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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대한 전환 (데이비드 C. 코튼) - 가나출판사

야곰야곰+책벌레 2024. 5. 1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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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변혁을 꿈꾼다. 단순한 기후 위기를 위한 전환이 아니다.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쓰지 않았을 거다. 인류가 지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지 겨우 5000여 년이 지났지만 암이 전이되는 수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숙주를 헤치지 않는 기생의 원칙을 인간은 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바닥에는 제국주의적인 사상이 깔려 있다. 인간은 제국 이전의 세계에서 더욱 많은 것을 이뤄냈다. 지금은 지구적 관점이 필요하며 전쟁과 약탈이 아닌 풍요와 돌봄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스토리를 거부할 수 없다. 잘못된 것을 알아채더라도 행동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스토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토리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스토리를 고쳐 적어야 한다. 그런 위대한 전환에 대한 얘기는 가나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과학계는 기후 위기에 대해 강한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인기가 필요한 정치인들에게 강한 브레이크가 필요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정책은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대중들에게 이런 위기의식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너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많이 다행스러운 것은 대중들이 점점 더 깨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생각이 된다면 세상은 변하고 인류는 새로운 스토리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거대한 위기 앞에 있지만 어쩌면 또 힘겨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공동체>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이런 선택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는 모른다. 미래는 예측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할 건지 새로운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은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왜냐면 태초의 인류는 공동체적인 사상이 강했고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풍요를 기원하고 돌봄을 나눴기 때문이다. 제국이라는 약탈의 스토리가 주류 스토리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이다.

  제국의 스토리는 화려하면 그 이면에 피팝 받고 죽어나간 인류에 대한 얘기는 쓰인 않는다. 위대하다거나 하는 영웅들 대부분은 비인간적이었다. 왕 중에 덕치를 하는 자가 적고 장수 중에 덕장이 많지 않았던 것은 정치라는 것 자체가 기만의 언어를 쓰기 때문이다. 올곧아서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는 곳이 바로 제국이다.

  나라가 바뀌어도 일반 인류의 삶은 그대로였다. 단지 약탈하러 오는 인간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육을 당하기도 했다. 야만의 기질을 가진 제국이 남긴 슬픔들이다. 이런 권력은 자본주의와 함께 돈이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칼질이 시작된 것이다.

  혁명은 권력을 다시 풀뿌리에게 돌려주었으나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 못한(당연하다고 여긴) 사람들은 그 권리를 독재에 대사 넘겨주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은 제국의 역사를 헤쳐 나온 사람들의 덕분이다. 그런 소중함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제국의 성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수의 권력자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안보는 그 첫 번째 방법이다. 외부에 적이 있다는 설정은 내부의 소란을 모두 잠재운다. 냉전체제는 두 강국 모두에게 좋은 시나리오였다. 소련이 붕괴되고는 적을 테러 집단으로 설정한다. 적이 있다는 끊임없는 설정은 강력한 구심점의 필요로 이어지고 권력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엔론 사태로 대통령에서 물러날 뻔한 부시는 이라크를 적으로 설정해 전쟁을 일으켰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권력자들에게는 큰 행운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는 이미지는 미국에 압도적인 군사력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정의라는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는 독재 국가나 쿠데타를 일으킨 국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몇몇 자료에는 미국이 그것을 지원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안보는 권력 유지에 가장 큰 필수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선거철만 되면 북풍이나 빨갱이니 같은 선전을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효과가 있는 듯하다.

  강대국들은 자금을 가지고 약소국의 자원을 탈취하는 것도 서슴없이 행했다. 실질 자원과 금융 자원은 별개의 것인데 그것을 이어 붙여 통화의 격차를 만들고 상대 국가의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구제해 준다며 민영화와 공공자원의 매각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 구제가 아니라 경제를 탈취당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이미 각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새로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주류를 이룬 제국적 사상으로는 공동체를 보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국의 기득권층과 신자유주의의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공동체를 계속 부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택권이 점점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 가난한 사람에게 당연해지는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풀뿌리 권력들이 모여 여론을 형성해야 하며 권력자들의 나팔수인 언론을 대신한 독립 미디어의 확산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양당 체제는 서로 적당히 해 먹기 때문에 다양한 정치인의 배출도 분명 필요해 보인다. 경쟁과 우위 선점과 같은 제국적 잔재에 물들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들이 계속 가로막을 테지만 지속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가 바뀔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한 노력.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모든 잘못은 개인에게 있다는 자기 파괴적인 인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돌봄과 연대로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쪽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선택해야 적어도 희망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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