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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신은주) - 앤의서재

야곰야곰+책벌레 2024. 3. 1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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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 들르면 조각조각 붙여 복원한 토기를 어김없이 만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고대 그림을 복원하는 장면을 만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땅 속에 묻혀 있는 유물은 땅 밖으로 드러나 우리와 만난다. 하지만 시간은 그것을 온전하게 보관하고만 있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훼손되기도 파손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품고 있는 시간의 기록을 버려둘 순 없다. 복원사의 손길을 거치면서 유물은 하나의 역사를 드러낸다.

  어느 문화재 복원가의 유물 이야기는 앤의 서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복원사라는 직업은 조금 특별하다. 과학과 역사 어느 중간쯤에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복원사가 되려면 이과를 가야 하나요 문과를 가야 하나요 같은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 역사를 느끼고 그 시대를 읽어내는 것은 문과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기술과 화학품들의 사용 그리고 테크닉을 따져 보면 역시 이과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유물이라는 것은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복원하는 자에게는 재료의 물성이나 화학적 조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냥 융합형 인재라고 하자.

  이 책의 제목도 참 좋지만 유물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와 마음이 참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유물이라는 것은 어쩌면 땅 속에서 시간을 멈췄는데 우리가 파내면서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훼손 진행도 빨라지기에 최대한 빠르게 보관을 해야 한다는 것도 뭔가 멋진 것 같았다. 땅에서 발견된 천마총의 색은 바로 변색되어 버린 감각이 바로 그런 것일까 싶다.

  우리는 물건을 개선하고 싶어 하지만 유물을 대하는 자세는 그렇지 않다.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이 그것을 대하는 최선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담은 물건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옳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 복원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보관해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기술이 발전하면 복원 불가능 했던 것도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물에 대하는 것에는 꽤나 큰 책임감이 있는 듯하다.

  복원가는 어떻게 보면 한 명의 의사와 같다. 유물에게 원래의 모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일까. 눈앞에서 유물이 와장창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복원가 또한 PSTD를 겪는다. 시간을 건너온 것들은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복원가는 버리지 못하는 성격들인 것 같다.

  수백 년 혹은 수년천을 침묵하고 있던 유물들. 그 속에는 권력을 갖지 못해 글자로 남겨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득하다. 세상에 꺼내지지 않은 그 이야기를 복원하는 사람이 바로 복원가다. 유물이 가져다주는 의미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유물은 그저 오래된 물건일 뿐이다. 그 속엔 분명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전달되는 것이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 건 없다. 모두 자신의 얘기를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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