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펜을 쓰기로 마음먹은 지 벌써 18일째다. 칼릭스 중펜을 써보며 전향을 해도 괜찮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지는 고작 3일째다. 이번엔 에벤홀츠 7에 1QXD와 제플옵을 사용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빨간색 러버가 1QXD 밖에 없다...)
셰이크에서 중펜으로 전향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중펜으로 전향한 이유는 포핸드 감각과 백핸드에서의 적응 가능성이라고 하겠지만 결국 희귀한 걸 좋아하는 마이너티 때문일 거다. 셰이크에서 하던 기술은 중펜에서 대부분 가능했고 손목의 자유도가 높았기에 빠른 임기응변이 가능했지만 안정성은 떨어졌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셰이크 그립이 여러모로 길다는 것이다. 키와 팔다리가 짧은 나에게 1cm의 길이로 놓치는 공을 셰이크핸드에서는 해낼 수 있었다. (물론 풋워크를 잘하면 다 해결된다)
여전히 하수인 내가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역시 마이너 한 감성의 소유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남자가 중펜을 들었으면 포핸 연속 드라이브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ㅎㅎ 그 좋은 셰이크를 버리고 오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1. 검지 중간 마디와 뿌리, 중지 끝마디, 엄지 뿌리의 고통
아기자기한 그립의 모양을 즐기는 것도 잠시, 쥐는 순간 맞닥뜨리는 불편함은 바로 당황스러움으로 바뀐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중지에 닿는 러버의 감촉도 급할 때 바꿔 쥐어지지 않는 러버 표면의 끈끈함도 모두 답답하다. 그렇다고 일펜처럼 포핸드가 편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면 뒷면의 각도가 만들어지지 않아 뒷면 기술도 할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립을 많이 깎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냥 적응해야 한다. 흔들리는 라켓을 고정하기 위해 힘을 주면 손가락 부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멘소래담과 마사지의 친해질 수밖에 없다.
잘못된 그립법과 약한 중지는 권총 증후군이라는 병에 들게 하고 손가락이 딸깍딸깍하는 느낌에 몸이 고장 난 느낌이지만 일정기간 쉬어주면 괜찮아진다. (하지만 쉬는 게 제일 힘들다) 중펜은 그립을 쥐는 방법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펜처럼 검지로 걸어 쥘 수 없기 때문에 앞면의 엄지와 뒷면의 중지가 라켓을 쥔다는 기분이 된다. 그리고 중지는 늘 엄지보다 힘을 많이 받기에 부상의 위험이 크다. 중펜에서 검지의 역할은 생각보다 적을 수 있지만 역시 포핸드 드라이브에서는 중요하다. 그에 맞게 그립을 다듬는 것은 또 하나의 과제다.
2. 백핸드에서 전면 사용은 평생 접어두어도 괜찮다.
마린 같은 감각이 없는 생체인에게 마린과 같은 플레이가 가능할까? 물론 멋있으니까 하는 거다. 일펜에서 중펜으로 전향하게 되면 일펜의 강력한 백푸시와 안정감 높은 쇼트를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셰이크에서 전향하면 전혀 알 수 없는 기술이기 때문에 굳이 전면을 이용한 백 기술을 익히려고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플레이만 하려면 굳이 중펜으로 전향할리가 없다. 포백 드라이브는 셰이크가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펜홀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전향한 기분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용품에서 희소성을 찾느냐 기술에서 희소성을 찾느냐는 결국 선택의 영역이다. 하지만 가는 길의 험난함은 많이 다르다.
3. 왠지 어색한 포핸드
일펜을 생각해 아주 쉽게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던 포핸드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포핸드 드라이브를 건 공에 힘이 전혀 실리지 않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며 일펜과 미묘하게 다른 점을 찾아낸다. 공을 때리는 지점이 셰이크에 맞춰져 있어서 그랬을까(일펜을 들고 하면 괜찮았는데) 타구점을 조금 앞으로 옮기니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팔꿈치도 나갈 것 같다. 힘은 실리는데 그 힘을 팔꿈치가 받는 기분이다.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강화 운동도 해야겠다.
물론 일펜과 통하는 부분도 있다. 셰이크핸드는 손목으로 각도를 조절한다면 펜홀더는 엄지로 각을 만든다는 점이다. 각을 닫을 때는 엄지를 지그시 눌러주고 각을 열 때는 엄지 힘을 다소 빼면 된다. 뒷면을 지탱하는 중지와 약지와의 밸런스 변화로 각도를 아주 쉽게 조절할 수 있다.
4. 뒷면 각도는 손가락보다 상체 활용이 중요하다.
손목의 뒤틀림으로 아주 편하고 자연스럽게 뒷면 각도를 만들던 셰이크 유저에게 중펜의 뒷면 각도를 만드는 것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 열려고 할수록 손가락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느낀 점이지만, 그립 법은 유지하면서 각도를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상체를 구부리며 닫아주는 것과 상체를 펴면서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뒷면 각도를 아주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중펜을 사용하게 되면서 몸을 사용하는 것을 더 고민하게 된다.
5. 손목은 쓰이는 것이다.
손목을 다치는 대부분의 경우는 손목에 무리학 힘을 쓰게 된다는 것에 있다. 중펜의 경우는 셰이크보다 더 많은 위험 요소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강력한 기술을 구사하려 할 때, 무리하게 공을 쫓았을 때 손목에 뜨끔한 느낌이 났다면 잠시 쉬거나 해당 기술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생각하는 손목의 사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팔꿈치와 어깨가 자세를 끌고 나가면서 자연스레 손목이 움직여 주는 것과 플릭과 같이 어깨와 팔꿈치 이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손목을 튕겨 스윙을 만드는 방법이다. 모든 기술에는 물리적 법칙이 성립된다. 관성을 이겨내려고 하지 말고 쓸 수 있게 하자.
펜홀더 그립의 가장 좋은 점은 헤드가 손바닥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손 끝의 감각이 곧 라켓 헤드의 감각이기 때문에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급한 상황일수록 대응이 잘 되는 기분도 든다. 손가락을 타고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확실함이 있다. (하지만 어떤 그립이든 적응만 된다면 비슷할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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