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독서 활동

(천상독서클럽) '내 이름은 빨강' 2월 정리 중..

야곰야곰+책벌레 2023. 3. 2. 20:07
반응형

  2월이 지나갔다. 사실 2월의 마지막 날에는 천쪽이상독서클럽 2월 도서인 '내 이름은 빨강'을 정리하여 공유하려고 했는데, 밥벌이가 바쁘다 보니 시간을 놓쳐 버렸다. 사실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저 읽는 편을 좋아하지만 이왕 하기로 한 거, 독서클럽 도서라도 제대로 파헤쳐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역시 시간이 너무 든다. 마지 한 권의 책을 쓸 기세다.

  '내 이름의 빨강'은 오스만 시대의 세밀 화가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전통과 변화의 사이에서 고뇌한다. 고뇌를 제공한 사람은 역시 술탄이다. 술탄은 황제와 같은 지위다. 술탄은 중에는 실제로 베네치아 화가와 교류를 하고 자신의 초상화를 남긴 술탄이 존재했는데, 바로 메흐메트 2세다. 젠틸레 벨리니가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오스만 화가 낙카쉬 시난 베이가 유럽 화풍으로 그린 메흐메트 2세의 초상화 (좌) , 베네치아 화가 젠틸레 벨리니가 그린 메흐메트 2세의 초상화 (우)

  물론 책에 등장하는 술탄은 보다 후세의 인물인 것 같고 자신의 초상화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에시니테 에펜디에게 원근법으로 그린 작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 작업에는 4명의 우수한 세밀화가가 작업을 하게 되는데, 에시니테 에펜디는 화가들이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지 자각하지 못하도록 작품의 파편을 그리게 만든다. 화가들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작업을 하게 된다.

자네가 나를 장님으로 만들거나 말거나 결국 이 땅에는 우리를 위한 장소가 없다네.
화풍을 갖는다면 어떤 면에서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끝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없어.
또는 옛 장인처럼 그림을 그린다면...  술탄은 우리 대신 다른 화가를 찾을 걸세.

  전통을 고수하려는 예술적 종교적 신념과 실용의 사이에서 고뇌는 시작되었을까.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는 세밀 화가들의 심리는 사뭇 다양하고 복잡하다. 실제로 세밀화는 페르시아 세밀화의 대가 중의 대가 비흐자드 이후로 전혀 발전이 없었다. 그 이후의 세밀 화가들은 모두 그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비흐자드의 '유수프의 유혹'(1488)

  오스만은 애정을 담아 4명의 세밀화가에게 올리브, 나비, 엘레강스, 황새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 살인자를 찾아라는 술탄의 명령에도 화가에 대한 애정을 보이지만, 술탄의 창고에서 옛 그림들을 보면서 오스만 예술의 편협함을 깨달으며 슬픔을 느낀다. 옛 페르시아의 세밀 화가들은 더 완벽하고 다양한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전통의 축을 '오스만'으로부터 시작된다면, 변화는 '에시니테 에펜디'로부터 시작된다. 서로가 서로를 탐탁히 여기진 않지만 에시니테 에펜디의 장례식에서 서로는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둘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남자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관찰자로서 등장하는 카라 에펜디다. 세큐레와의 로맨스로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네 명의 화가와는 추리소설을 생각나기도 한다. 그리고 책 전반에는 커다란 갈등이 존재한다.

  죽은 자는 엘레강스다. 그는 금박을 입히는 화가며 그림의 테두리를 입히는 작업을 한다. 테두리 작업은 프레임을 만드는 작업으로 그림의 완성과도 같고 현재를 박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가장 혼란스러웠으며 비밀스러운 작업에서 가장 위험해진 존재였을 거다.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

  카라가 네 명의 세밀화가를 추궁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색다른 요소들의 이야기로 속마음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에는 그것들이 그냥 독립된 개체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사물들은 모두 네 명의 세밀화가가 비밀스러운 작업에서 그런 것들이다.

올리브 - 악마, 말, 수도승 두 명
황새 - 개, 나무, 나뭇잎
나비 - 죽음, 여자
엘레강스 - 금박

그리고 나뭇잎은 많은 세밀 화가들이 시장의 돈은 네 명 모두가 그렸다.

'나는 살인자입니다'라는 챕터에서 살인자의 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이런 그림이 얘기하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무엇보다 재밌다. 그리고 '돈'이라는 건 술탄의 관심에서 벗어난 세밀 화가들이 살아나가야 하는 생계 수단이기도 했다. 다른 그림들은 개인의 성향을 나타내지만 돈이란건 모두가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야, 이 유럽 이교도놈아, 왜 이놈들 그림을 그리느냐?
당신들의 나쁜 부분을 담은 그림이 더 돈이 되기 때문이라오
돈이 되면 악마도 아름답게 그릴테냐?

신은 천사들 눈앞에서 인간을 창조하였고 신은 천사들에게 그 피조물에게 복종하라 요구했다. 인간은 그 그림자까지 낱낱이 그려져야 할 정도로 중요한 피조물인가? 세상의 중심에 신이 아니라 인간이 자리 잡아도 되는가? 꾸란 속의 악마는 피조물에게 복종할 것을 거부했다. 서양의 화풍인 원근법 즉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인간의 눈으로 보는듯한 그림은 악마가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오스만의 화가들은 늘 신의 시선에서 인간 세계를 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저 훌륭한 고대의 작품을 탐하는 행위에 불과했을 거다. 감히 인간의 눈으로 신의 시선을 흉내 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머리가 아닌 손으로 그려냈고 그 경지에 이르게 되었을 때 스스로 눈을 멀게 하여 한결같은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역사는 모두의 이야기이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듯이...

나의 초상화가 그려지길 바랐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죠.
행복의 그림이 그려졌으면 했습니다.

우리는 사실 행복의 그림에 있는 미소가 아니라 삶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요.
세밀 화가들은 그걸 알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리지 못하는 것도 그거예요.
이 때문에 그들은 삶의 행복을 바라보는 행복으로 대체한 겁니다.

신의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이 그리는 모든 그림은 신의 것이다. 서양풍 동양풍이 있다고 하지만 서양도 동영도 모두 신의 것이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의 문화를 탐하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나비가 그린 그림과 그의 말로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갈무리해 본다.

우리처럼 몸이 겹쳐 있으면서 서로를 증오하는 두 사람을 어떻게 우아하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