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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독서클럽) '내 이름은 빨강' 배경지식

야곰야곰+책벌레 2023. 2. 7.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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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의 빨강'은 16세기 후반 튀르키예를 배경으로 한다. 16세기 말은 오스만 제국은 전성기를 지나 정체기에 들어 선 때이기도 하다. 당시 최대의 부국인 베네치아와의 지속적인 전쟁은 두 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가는 도화선이 되었다. 하지만 16세기는 셀림 1세의 영토 확장을 시작으로 쉴레이만 1세의 미친 듯한 영토 확장으로 주변 국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15-17세기 유럽, 이란 방면 팽창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오스만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튀르크어를 사용하였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각자의 언어를 사용했다. 공문서에는 튀르크어가 사용되었지만 튀르크족이 아닌 민중에겐 그들의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칙령과 칙어에 그리스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부족이 엉켜있고 여러 나라의 문화가 뒤섞인 오스만 제국은 그 자체로도 문화적 부흥기를 맞이하였으나 그 내부적으로는 혼란의 시기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는 오스만 제국 최대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 아제르바이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평가받는 푸즐리, 시인들의 술탄이라는 별명을 가진 바키 등이 모두 쉴레이만의 후원을 받으며 활약했다. (나무위키) 이 속에서 오스만은 베네치아의 베네치아는 오스만의 영향을 받았다.

  '내 이름의 빨강'이라는 작품에서 가장 대립되는 요소는 '그리던 그대로 그리는 것'과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에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이 내려다보는 시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그려 내려는 기존의 세밀 화가와 세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보이는 것에 대한 세밀 화가의 대립이었다. 이것은 종교적인 문제로 번지며 정교와 이교의 문제로 번지기까지 한다.

  기존 세밀 화가의 입장은 기술의 극대화였던 것 같다. 모두가 같은 것을 그리지만 그 디테일함은 최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모두가 같은 것을 그리고 완벽을 추구한다. 화풍과 스타일은 개인의 미숙함을 더하는 것일 뿐이며, 서명은 죄책감과 같은 듯하다. 신의 시선에 가까워지려는 그들의 노력이다.

  그에 반해 베네치아의 화풍을 그리는 사람들의 입장은 특별함이었던 것 같다. 나만의 것을 남긴다는 개인적인 욕심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이 특별함을 담고 있다. 누가 누굴 그려도 완벽하지만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기존의 그림으로는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특별함을 담을 순 없다. 술탄이 화가에게 공주를 그리라고 했을 때, 공주는 그림은 완벽하나 그 속에 사랑은 없다는 문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역사는 시간의 기록. 기억은 과거를 현재에 끄집어 놓을 수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순간의 특별함을 담아내는 것은 어쩌면 영원을 기록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익명으로 사라질 자기의 노력에 대한 개인적 욕심의 투영일지도 모른다. 기존 세밀 화가는 그것을 악마에 씐다고 폄하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 속 대가의 말처럼 지금의 그림 또한 어느 누군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을 그대로 그런 것뿐이며, 중국에서 빨간색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빨간색을 쓰고 있겠냐는 질문 속에 시대의 흐름은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신의 시선을 모방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을 모독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 또한 명료했다. 신은 동양의 것도 서양의 것도 모두 자기의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적개심은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그것은 오스만 제국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서양과 멀리 떨어진 극동 아시아의 경우에는 정말 새로운 것에 대한 매력을 느꼈을 것이지만 오스만은 유럽과 그대로 맞닿아 있기에 서로에 대한 경쟁심이 치열했을 것이다. 오스만은 서양의 문화를 이교도로 혐오하고 서양 또한 그러했다. 같은 유일신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꾸란과 성경의 대립도 같은 것일까?

  그럼에도 두 문화는 치열하게 서로를 탐했다. 튀르키예를 통해 수입된 '커피'는 초창기에는 '이도교의 음료', '악마의 유혹'과 같이 백안시되었지만 그 오묘한 맛에 매료되어 교황이 커피를 축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자 강대했던 이교도 제국의 문화를 경탄의 눈길로 보는 시선으로 바뀌었고 오리엔탈리즘적인 환상이 되어갔다. 이를 '튀르크리'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이 아닐까 싶다. 유럽 귀족 사이에는 튀르키예풍 의복을 입는 유행도 생겨 났다.

  문화는 서로 뒤엉켜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것인지 모른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탐하고 새로운 것에 경의를 표한다. 유행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변화의 앞에 서 있다는 우쭐함은 참을 수 없는 행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빨강'일까? 빨강은 국경을 넘는 '아랍 세계를 이어주는 핏줄' 같은 상징이다. 이슬람 대부분의 국가들은 빨강, 하양, 초록, 검정만을 사용한다. 흰색은 '칼리파 시대', 초록은 사막 지대의 번영과 파티마 왕조의 상정이다. 검정은 아바스 왕조를 뜻한다. 빨강은 이슬람 혹은 정통의 색이다.

  작품 속의 빨강은 이슬람 그 자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전쟁과 살인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에는 수많은 빨강이 존재함을 얘기하고 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빨강의 존재를 나타내는 많은 부분들이 등장한다. 빨강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문화의 충돌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받은 한 살인 사건. 그것을 둘러싼 16세기말 오스만 제국의 단면과 예술가들의 번뇌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며 그 화자는 때론 사물이 되기도 한다. 그것들의 생각을 한 챕터마다 담았다. 마치 단편 소설 묶음 같으면서도 장편 소설인 것이 매력이다. 누가 살인자일까? 주인공은 범인을 찾고 사랑을 완결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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