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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3

튀르크인 이야기 (이희철) - 리수

대단한 제국의 역사를 이루고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오스만 제국. 서양에서는 '야만인'으로 동양에서는 '오랑캐'로 불렸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도 서양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은 끊어진 역사의 사슬을 이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유목민 국가는 정주 국가와 다르게 역사를 기록하지 않아 그 기록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종교를 받아들이고 정주를 시작한 위구르 부족에 들어서야 그 기록이 조금씩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오랑캐라고 불렸던 이 유목민족에 밀린 중국 땅 위의 나라들은 치욕을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 두지도 않았다. 몽골반점, 복합궁, 편두, 동북 등의 여러 근거를 들어 대륙을 건너 동로마를 무너트린 튀르크인이 한국인일지라도 모른다..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 (앙드레 클로) - W미디어

오스만 600년 역사 중에 가장 강한 군주를 뽑자면 개인적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며 정복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메흐메트 2세다. 그는 카이사르와 칼리파 칭호를 동시에 사용했으며 서양의 문물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다민족, 다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오스만 제국의 든든한 바탕을 만든 인물이다. 메흐메트는 아들 바지예드 2세는 전쟁에 대한 욕심보다 정권 안정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배척했던 젬 왕자와 서양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는 내치를 강하게 했다. 함대를 구축하고 베네치아의 영토를 휩쓸었다. 더불어 유럽 정세에도 관여를 하게 된다. 일개공국이었던 오스만은 유럽의 세력 균형을 좌우하는 핵심적은 국가가 된다. 냉혈한으로 유명한 셀림 1세는 8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그 업적은 그렇게 가볍..

오스만 제국 (오가사와라 히로유키) - 까치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500년은 거뜬하고 1000년의 신라도 존재한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600년 역사가 그렇게 대단한가 싶기도 할 거다. 하지만 제국이라는 광활한 영토를 600년 동안이나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로마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게는 공포를 심어줬던 '오스만'.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는 패배감의 역사로 남아 있었지만 최근에는 찬란한 역사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오스만이라는 제국이 튀르키예 족이 주축이 된 역사는 아니지만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이뤄진 제국의 역사이고 그 기록이 많지 않아 오해도 많았지만 점점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목민의 부족 국가로 시작한 제국에서 오스만은 그저 강한 부족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제국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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